牛步萬里-나의 삶

내 오랜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nongbu84 2010. 11. 9. 07:48

“내 오랜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 생활의 발견

이삭처럼 잘 여문 그리움을 손에 쥔 날, 하루 내내 마음이 어지러워 거리를 서성거립니다. 오전에는 얼룩무늬 햇살 드리운 은행나무 숲을 산책하다가 오후에는 노루오줌 같은 햇살이 졸다 가는 간이의자에 앉아 아이들의 웃음이 맴도는 운동장을 바라봅니다. 저녁노을처럼 잘 익은 그리움은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크든 작든 그리움을 가슴에 담은 사람은 귓불 빨개지도록 허리 굽혀 신발 끈을 묶습니다. 그리운 사람에게 달려가려 꽁꽁 동여맵니다. 인생이란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먼 곳에서 찾아오는 그리움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려고 허리 굽혀 눈물 감추며 신발 끈을 묶는 일입니다.

 

겨울 바다가 그리워 경춘선 기차를 탔습니다. 굽이치는 몇 고개를 돌아 기차는 겨우 동해안 해안가에 나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에돌아서는 모퉁이가 없었다면 참 숨 가쁜 질주일 것입니다. 직선으로만 달리고 높이만 오르려 했다면 숨이 차서 오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곡선으로 돌고, 내리막길이 있고, 오르막길이 있어 숨 돌릴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산사가 그리워 개심사를 찾았습니다. 洗心洞을 오르면서 손을 씻고 마음을 씻습니다. 매캐한 소나무 향이 마음에 담깁니다. 한없이 치솟지만 않고 바람불면 가지 내어주고, 구불구불 오르다 이제는 가지를 뻗습니다. 부러질 듯 한 없이 내리 뻗기도 합니다. 소나무는 숲을 이루면서 각자 자기 속에 부러진 상처를 안고 구부러진 모양으로 서 있습니다.

 

마음의 강물이 흘러드는 사람을 만나면, 맑은 눈동자에 내가 보입니다. 잡은 손으로 따뜻한 조약돌 같은 약속이 전해집니다. 이 사람을 바로 지금 여기가 아니면 언제 어디에서 만날 것이며, 내가 아니면 누가 만날 것이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언제 어디에서 사랑할 것입니까?

 

가볍든 무겁든 만남은 골목길을 에돌아 나오면 그리움으로 변합니다. 꼬리에 불붙은 황소처럼 다시 달려가면 바람만이 휑하니 골목길을 빠져 달아납니다. 전봇대에 매달린 광고지만이 바람에 울고 있습니다. 떠난 사람에게서 죽음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누군가의 죽음이 내 인생을 감소시키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먹고 잠자고 친구와 만나고 헤어지는 일입니다. 친목회나 송별연을 베풀고 눈물을 흘리고 웃는 일입니다. 한 달에 한번씩 머리를 깎고, 퇴근하면 화분에 물을 주고, 이웃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가운데 흘러가는 세월이 감소하는 일입니다.


두울. 분꽃

석양이 산등성이에 걸려

은행 알처럼 노랗게 쏟아졌다.

돈 사러 떠난 아버지는 오지 않았는데

분꽃은 인정 없이 피었다.

어머니의 부엌에서

고등어는 무에 스며들고,

장작불은 된장찌개처럼 끓었다.

굴뚝에서 청솔 타는 연기가

피어올라 어둠이 파랗게 내렸다.

아버지는 달빛에 살얼음 끼도록 오지 않고

어머니는 아랫목에 가슴 저린 밥을 묻어두었다.

울타리에 쪼그려 앉아 밤새 피는 분꽃,

나의 어머니


세엣. 통영 바닷가 비탈진 집

새벽까지 별들이 바다에 쏟아졌다.

물고기들은 별빛을 주워 먹고 부른 배를 두드렸다.

어둠 속에서 금빛 비늘이 반짝반짝 빛나

바다 가득 메밀꽃이 피었다

 

새벽까지 바다는 달을 품었다.

만삭의 바다는 시큼한 살구가 자꾸 먹고 싶었고

자주 산 그림자를 삼켰다.

밤새 무거운 몸을 뒤척이며 출렁거렸다.

 

통영 바닷가 비탈진 집에서

나는 하룻밤을 묵으며

비린 미역냄새 가득한 청춘과

쌉쌀한 멍게 맛으로 감겨들던 우정과

화려한 산호의 무늬를 자랑하는 사랑을

이야기하였다.

집 주위에서 서성거리며 엿듣던 동백도

연애 소식에 놀라 화들짝 핏망울을 터뜨렸다.

 

그해 봄 동백은 밤을 자주 새웠고

나도 동백꽃처럼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떠나간 사람을 기다렸다

 

통영 바닷가 여름 밤

나는 달을 보며

송진처럼 엉겨 붙은 인연들과

새벽 논두렁을 둘러보던 아버지의 논흙냄새와

누나의 분 냄새가 묻었던 분홍색 베개와

눈물로 얼룩진 연애편지와

조약돌처럼 따뜻한 사랑의 맹서를 생각했다.

 

그 해 여름 통영바닷가 비탈진 집에는

포도송이가 통영 계집애의 검은 눈동자를 그리워하며

까맣게 익어 갔다. 


네엣. 소래포구

떠남보다 기다림이 앞서는 소래포구의 새벽,

아버지가 연두색 장화를 신으면

배의 불빛은 시장 길목의 노란 대문 집 여자처럼

밀물이 들어오는 때를 맞추어 신음소리를 냈다.

 

배가 떠나면

눈이 살얼음으로 자박자박 박히고

기러기 떼는 시장 문턱 술집 지붕에서

날개에 품었던 고개를 쳐든다.

 

사람들은 뻘밭에 박힌 목선처럼

뼈가 드러난 생애를 찬바람으로 덮으며

화톳불을 피운다.

 

낙지처럼 감겨 붙는 목소리와

농어처럼 토실한 손등과

채소처럼 상큼한 눈동자와

돌담처럼 경계하는 가슴과

새우처럼 등 굽은 주름살이 모여,

 

소금처럼 굵은 눈을 맞으며

꽃게처럼 화려한 지폐를 건네며,

꼬막처럼 쫄깃한 사투리로

갈대처럼 서걱이는 바람소리로

홍어처럼 쏘는 욕설로

바람이 빈 소주병에 집을 만든 사연과

비린 냄새나는 소문을 이야기한다.

 

다만 천막 속에서 죽은 천희 아버지와

절름발이가 된 목재소 주인과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인연은

침묵한다.

 

기다림보다 그리움이 깊어진 소래포구의 새벽,

화톳불에 상자조각을 던져 넣으면

포구에서 썰물 때를 맞추어 바다로 나가

그물을 풀고 걷어 올렸던

눈썹 짙은 사내가 그립다.

뻘에 박힌 목선 한 척과

뼈만 남은 초상화를 방에 걸어둔 채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그립다.

 

나는 화톳불에 등 돌리며

소래포구처럼 뒷짐만 진다

 

다섯. 봄에서 가을로

1. 그 해 봄

-누나가 눈 녹듯 사라지던 그 해 봄 새벽,

어머니가 물었다.

“오늘 새벽에 닭이 울지 않네요. 간밤에 횃 치는 장 닭을 어둠이 잡아 갔나 봐요.”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무슨 소리여? 닭이 새벽에 울지 않으면 언제 울겠는가? 기다려보세.”-

 

봄이 오는 바닷가 언덕

물구나무 선 병아리 같은 개나리꽃이 피고

입을 앙다문 목련 꽃 송이

핏기서린 눈의 매화는 취객처럼 노려보았다.

 

막다른 골목 길을 닮은 아버지의 얼굴은

죽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고양이 같은 잿빛 하늘로 변하고

툇마루에 앉아 누나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모눈종이의 직선에서 길을 잃은 콤파스처럼

뾰족하게 말라갔다.

 

세상은 너울처럼 출렁이다 잠드는 곳

삶은 언덕에서 기다리며 언덕 너머를 바라보는 일

 

봄이 오는 바닷가 빨간 지붕의 집,

나는 울타리로 서서 귓불 빨갛게 언 동백처럼

봄볕에 얼굴을 태웠다.

 

봄이 오면

자꾸 누나가 끓여주던 멸치국물 우려낸 국수가 먹고 싶었다.

 

2. 봄과 가을 그 사이

당신이 보고 싶던 시간 만큼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등불달린 주막에서

회초리 같은 슬픔 세 잔과

유리창에 비친 추억 세 잔과

까치밥처럼 매달린 감 같은 우정 세 잔과

싸리꽃처럼 화사한 수다 몇 잔과

구철초처럼 서러운 어머니의 얼굴 몇 잔

그리고 슬리퍼 신은 생활 한 병을 마셨다.

 

3. 그 후 가을

당신이 보고 싶으면 문득 가을이 왔다.

 

당신 때문에 나는

우물에 비친 파란 하늘이 되고

담청색 야전잠바차림의 은행나무가 되고

장독대 항아리에 기대어 조는 햇살이 된다.

 

사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그 무엇으로 변하는 것

 

당신이 보고 싶으면 성찰 없이 성장한 여름은 껍질로 메말랐다.

 

당신 때문에 나는

찬바람을 맞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손을 잡고

사람들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을 만든다.

 

사는 일이란

사랑을 받으면서 사랑하며 사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

 

당신이 보고 싶으면 내 마음은 곱게 물들며 기도를 하였다.

 

........내 오랜 사랑아

몸 맘 다 아프지 마라

아픔은 내가 대신 겪어주마.............

 

이제 당신은 주먹만한 모과 향처럼 코끝에 시리게 매달려 사랑으로 남았다.


2010. 11. 08  친구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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