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슬리퍼 한 켤레

nongbu84 2017. 10. 26. 11:59

 

슬리퍼 한 켤레

 

스물 두해 신은 슬리퍼 한 켤레

책상 밑에서 잠시 쉬고 있다

발뒤꿈치 닿은 자리엔 낮달 뜨고

가운데 부푼 언덕 넘으면

엄지발가락 닿은 자리에

노랗게 물든 은행잎 한 장

나머지 네 개가 누른 자리에

은행 네 알, 가지런하다

 

발가락 힘주어 파 놓은 웅덩이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이 고였던가

해 바뀌어 떼어내는 달력마다

얼마나 많은 얼룩이 묻었던가

 

삶은 반들반들한 빙판 위 걷는 일 같아서

걷다가 넘어져 깊숙하게 흉터 패이지만

그곳 눈물 마른자리에서

시간의 얼룩 같은 연꽃 피울 줄도 알았다

 

, 슬리퍼가 끌고 오르내리던 계단 난간의

아슬아슬한 을 생각하면 통째로 쪄서 말린

고구마를 먹는 일처럼 목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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