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지르지 마라, 애 놀란다.
소리지르지 마라. 애 놀란다.
기나긴 복도를 걷습니다. 뚜벅뚜벅 계단을 향해 돌아서려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잠시 발길을 돌리면 은행나무 시원한 그늘을 향해 걸을 수 있습니다. 은행나무 그늘 밑을 산책하다보면 영글다 지친 은행알들이 후두둑 바람에 놀라 떨어집니다. 시루미봉 온수초등학교 교실에서 고음의 합창소리가 울려퍼집니다. 그 속에서 아들녀석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합창속에 파묻혔던 소리에서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에 나도 놀랍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들립니다. 넓은 운동장으로 울려퍼지며 이내 바람이 되고 풍문이 되고 추억이 됩니다. 풍금소리에 맞추어 노래부르던 초등학교 시절, 돌 계단을 펄쩍펄쩍 뛰어 넘던 개구리처럼 교실로 오던 선생님을 보면 무척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침발라 쓰던 연필로 공책에 필기를 하면 슥삭슥삭 글쓰는 소리가 온 몸에 전율을 일으킵니다. 소름이 쫙 돋는 그 경건함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술취한 곡조를 알지 못했다면 이 소리도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땅거미 내린 저녁 아버지는 술취한 곡조에 맞추어 소리를 질렀고, 동네 입구 집의 개 짖는 소리가 온동네 소문으로 퍼집니다. 아버지의 곡조에는 숯돌에 낫가는 소리가 있었고, 세상을 찍는 도끼소리가 있었습니다. 산사의 풍경소리가 없었다면 바람이 머물다 가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돌담을 에돌아 비추는 햇살만이 한적한 풍경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풍경이 바람을 잡고 흔들면 한적과 침묵은 소리로 바뀌고 소리는 침묵의 고요로 돌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