啐啄同時-나의 교육

교육이란 자기 구원의 길

nongbu84 2010. 4. 11. 08:18

교육이란 자기 구원의 길이다.


1. 지도에는 사람이 없다. 나는 반듯반듯한 관광지도를 보는 일보다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걷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이론의 정연한 논리보다는 한 걸음을 옮기는 땀방울을 좋아한다. 팔십 평생을 걸어야 하는 삶의 지도는 전국의 교통지도에도 없고, 세계의 항공로에도 없다. 삶의 지도는 우리 마음  속에 있으며, 그 마음에 새긴 사람들 속에 있다. 사람들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을 찾고 싶다. 


“교사의 길은 어떤 길일까?”


사람들은 버스정류장에서 서성거리며 가야 할 길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들 마음으로 파고드는 길을 찾을 수는 없다. 버스 정류장에는 차가 데려다 주는 길만이 있다. 차는 정해진 곳에 서고 정해진 길만을 따라 달릴 뿐이다. 한 번의 속도에 만족 못한다. 그러므로 왔던 길을 황급히 되돌아 달려간다. 달려가고 또 다시 달려가는 반복 순환을 한다. 한 번 버스에 오르면 마음대로 내릴 수 없다. 빨리 가야하고 정해진 곳에서만 서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 없이 달려가는 버스의 승차감은 편안하다. 하지만 내리고 싶을 때 내리지 못하고 서고 싶을 때 서지 못한다. 강제가 주는 편안함만이 있다. 하지만 마음편한 정착지는 마음속에 있고, 그 마음에는 사람이 들어있다.


“교사의 마음에는 속도, 경쟁, 효율성, 안정과 편안이 기거하지 않고 느림과 더딤, 협력, 사람생각, 불편함을 참는 용기가 살고 있다.”


달력에는 약속이 없다. 약속은 사람과 사람이 새끼손가락 걸고 마음의 도장을 꾹 누르는 일이다. 달력에는 동그라미로 그려진 날짜만이 있고 마음의 도장이 없다. 조급한 인사치레만 있고, 존중의 마음과 기다림은 없다. 약속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간절하게 기다릴 때 가능하다.


“교사의 약속은 아주 오랫동안 아이들을 기다리고 생각하는 시간 속에 있다.”


교사용지도서에는 교육이 없다. 아이들 다루는 잔재주와 기교가 있고, 삶으로 체화 되지 못하고 수단으로 전락하는 지식만이 있다. 교육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그 마음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이다. 


“교육은 삶이며, 삶은 우리가슴속에 남는 것이다.”  

 2. 떠날 때는 발걸음 가벼운 바람이 되라. 바람이 되어 만국기 펄럭이는 가을 운동회 운동장을 휘돌아 나갈 것이며, 양철지붕에 떨어진 낙엽을 휘감고 갈 일이다. 운동장 한 바퀴를 돌고 나면 그 곳에 추억이 남을 것이며, 낙엽을 휘감고 가면 그곳에 소나가 퍼붓는 시원한 소리만 들릴 것이다. 머무를 때는 뿌리 든든하게 내린 나무가 되라. 나무는 가지가 부러질수록 뿌리를 땅속으로 내린다. 부러진 상흔은 감싸 안으면서 두툼한 근육질을 키운다. 아플수록 뿌리를 내려 뻗는 법이다. 상처받을수록 땅을 더 붙들고 실뿌리를 하나라도 더 뻗는 것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함이다. 그 자리를 지키며 새에게 쉬어갈 나뭇가지 하나 내어주기 위함이다. 바람에도 끄떡없고, 풍상에도 마르지 않는 든든한 나뭇가지 하나 갖기 위함이다. 풍상이 오면 마른버짐 털어내듯 나무껍질 몇 개 내어주면 된다. 그 자리를 지키며 어린 새들에게 겨울에 먹을 과일 몇 개 달기 위함이다. 춥고 가난해도 내어주는 것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뭇가지 하나 부러졌다고 쓰러질 수는 없다. 뿌리를 더 내려 나를 지켜야 한다. 바람은 붙들수록 떠나는 법이다. 머물렀던 거처를 뒤로 하고 훌훌 털고 일어서는 법이다. 미련과 아쉬움이 남을수록 더 떠나는 법이다. 머무르는 자들은 뿌리 내린 나무가 될 것이며, 떠나는 자들은 발걸음 가벼운 바람이 될 일이다.


“교사가 머무를 곳과 떠날 곳은 어디인가?”


나는 어느 한 날 이 세상에 내어 던져진 상태로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염려해야 하는 자유와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구원받아야 한다. 나는 자유로운 선택과 불안, 한가로움과 무의미함이라는 부조리와 모순 속에 살고 있다. 나는 구원받아야  한다. 가끔 찾아오는 권태라는 악의 꽃에서 벗어나 나를 구원해야 한다. 포기와 절망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나는 구원받아야 한다. 떠남과 머무름의 이치를 잘 터득하고 걸어가야 한다.


“교사인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길, 내가 머무를 곳은 어디이고 내가 떠날 곳을 어디인가?”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나로 인해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곳에 있다.  나로 인해 이 땅이 더 기름지고 곡식이 풍요롭게 자라고 사람들의 마음이 더 풍성해 질 수 있다면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 나로 인해 단 한사람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한 사람이다. 내가 걸어감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동행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말을 함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라도 훌륭해진다면 자기를 찾은 사람이다.


내가 머무를 곳은 나로 인해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고 훌륭해질 수 있는 곳에 있다. 내가 산책을 하든 약속을 하든 나의 말과 행동으로 그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곳,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도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는 곳에 있다.


나를 떠나야 할 곳은

“나는 불편하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괜찮다.”는 곳이며,

“나에게는 손해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가만히 있는 곳”이며,

“내가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침묵하는 곳”이다.


내가 머무를 곳은

“간밤에 길에서 얼어 죽은 동사자에 대해서도 나는 책임을 느끼는 곳”,

“내가 직접 가담하지 않았어도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는 곳”,

“내게 이익이 되고 편해도 그 이익과 편안을 집어 던져야 할 이유가 있는 곳”이다. 

 3. “교사는 마음의 행간을 읽어내고 영혼의 맥락을 짚어 볼 수 있는 약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