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步萬里-나의 삶

삶의 이유 - 노란국화

nongbu84 2010. 8. 22. 16:44

매미는 늦여름 고비에서 쩌렁쩌렁 울고 있고, 과수원 능금은 귓볼 빨갛게 익어갑니다. 햇살은 귀 따갑도록 잔소리를 퍼붓습니다. 목공실 벽 밑에 노란 국화가 몇 송이 피었습니다. 참 소담하고 예쁩니다. 매일 지나다녔지만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점심 때 그늘을 찾다가 샛노란 개똥참외 같은 노란 국화 몇 송이가 흰 국화 꽃다발 속에 피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란 국화는 담 모퉁이를 에돌아 담 밑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비에 젖지 않을 거라는 마음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바람은 에돌아 더 강하게 불었고, 빗물은 모여 모여 벽 틈을 헤집고 국화 뿌리 하얗게 드러낼 정도로 세차게 흘렀습니다.

 


노란 국화는 자신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모퉁이를 돌아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면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뿌리가 약해 그 틈새에서 금방 쓰러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밤이면 국화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손가락 같은 뿌리를 땅속으로 깊게 뻗었습니다.

 


노란 국화는 강하게 서있고 싶었습니다. 빗물이 모여 땅을 헤집고 파고들면 강한 힘으로 발가락을 버텼습니다. 오히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뿌리는 양분을 빨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약했을 것입니다. 빗물이 세차게 흐르는 새벽이면 국화는 뿌리 뽑히지 않으려고 땅 속으로 내리 뻗으며 실뿌리 하나를 더 만들었습니다.  

 


벽 밑에 뿌리 내린 이후 노란 국화는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옆에도 많은 국화가 자랐습니다. 비좁은 땅에서 서로 뿌리내리려고 자리다툼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잎사귀에 박힌 가시는 쟁반처럼 크게 보였습니다. 옆의 국화가 잎이 떨어지며 아파하여도 자신의 잎사귀 구멍은 우주공간처럼 넓게 보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뿌리 내리며 옆 친구에게 상처를 준 자신의 잘못은 바라보지 못하고, 내 뿌리를 건드린 친구의 잘못은 멍석처럼 넓게 보았습니다. 아플 때마다 자신은 늦여름 미류 나무에 달라붙어 쩌렁쩌렁 우는 매미의 울음을 흉내 냈고, 친구의 우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노란 국화는 떠나는 친구의 뒷모습도 보았습니다. 새벽이면 멋진 모양을 자랑하던 몇 송이는 관상용으로 꺾여 그 곳을 떠났고, 몇은 시장으로 팔려가지 못하는 자신을 탓했고, 몇은 멋진 자신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목을 비난하였습니다. 노란 국화의 빛깔을 시샘하거나 무시하는 흰색 국화들의 두런거림도 들었습니다. 몇 송이는 고상한 척 하였고, 몇은 박제된 모양으로 숨죽여 있었습니다.

 

 


노란 국화는 서 있던 그 자리에서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찬 서리가 내릴 것이고, 눈발도 휘날릴 것이며, 이별이 찾아오고 긴 겨울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노란 국화는 그 터전에서 그 빛깔을 갖고 서 있을 것입니다. 담 밑 에돌아 선 곳이 국화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어렵게 뿌리내려, 자신의 아픔이 크게 보이고 친구의 아픔이 작게 보일지라도, 떠나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애닯게 바라보면서 서 있을 것입니다.

 


떠나지 못함도 시련입니다. 떠나보냄도 시련입니다. 이별하지 못함도 시련입니다. 이별도 시련입니다. 노란 국화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그 빛깔을 갖고 피어있는 시련의 꽃입니다. 국화는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에 비유되어 고결함과 고상함을 뽐내는 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국화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며, 향기도 뽐내지 못하고 ,고운 자태도 뽐내지 못하고 얼어붙은 망부석처럼 서있을 뿐입니다. 그 자리에서 서서 말도 못하고 마음만 노랗게 물들고 있습니다.

 


그 마음의 시련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오죽했으면 마음이 노랗게 짓물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