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집
외딴집
청솔 타는 매운 인연 사라진 지 오래,
만월(滿月)을 누가 밟고 떠났을까
한 쪽 귀퉁이에 발자국만 남아
지붕 위 박꽃은 서럽도록 하얗다
텁텁한 밑술에 취한 달빛은
흰 사금파리에 베였는지
자꾸 비척거리며 흔들린다
만삭(滿朔)의 솔숲에서 삭정이 부러진 밤
바람이 물고온 소문은
가마솥 손잡이를 맴돌고
깜부기 눈썹과 까만 눈동자가
새벽에 잉태한 처음의 흰 감꽃,
그 감꽃으로 하얗게 피고 진 누나는
원시(原始)의 죄인이다
앙심(怏心)품어 산 세월을
용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빗질 못한 쑥대머리에 겨우 비녀 꽂은
도깨비바늘은 뼈만 앙상한 헛간에 자라
자꾸 헛간처럼 마른 옛날을 잡아채고
성찰(省察)한 사랑과 헤어지는 일이
얼마나 가슴에인지
마르고 닳은 문턱 그 그늘마다
질경이가 옹기종기 피어
자꾸 흰 사발 푸른 무늬로 박힌다
만나면 떠나지 않는 인연이 어디 있을까
약봉지를 올망졸망 매단 처마 밑
시렁에서 싸릿가지 한 다발을 내려
아침의 종아리를 치지만
메주덩이 쩍쩍 갈라진 틈에
곰팡이가 시퍼렇게 슬을 뿐
누나는 돌아오지 않고
살짝 얼다 만 연시가 녹는다
그리워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끄름이 더께더께 붙은 부엌천장에서
손금처럼 헝클어져
빈 제비집을 붙잡는 거미줄,
그 위태로운 동거로 남은 계보(系譜)에서
상여 같은 제비집은 허물어지고
뱀이 장독대 돌 틈에 벗어놓은 허물,
그 산딸기 냄새나는 텅 빈 집에서
고요(古謠)는 찬란(燦爛)한 벌을 받는다
벚꽃이 눈발처럼 쏟아지는 뒷산자락
배꽃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앞냇가
들판 한가운데 혼자 선
돌담에서 햇살이 졸고 있는
빨간 지붕의 외딴 집,
오랜 시간
가슴에 맺힌 세상의 인연은
외딴 집 고즈넉한 길로 들어와
다시 되돌아가지 못한 채
감나무로 선다
한 발로 서서,
청산(靑山)으로 향하는 길을
온 몸 줄기마다 문신(文身)으로 새겨 넣으며
노랗게 주막등불 같은 감꽃을 켠다
* 39번 국도를 따라 온양에서 송악으로 가다보면 거산리에 있는 뒷산 앞내 들판 한 가운데 외딴 큰 누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