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脚陽春-나의 사랑

봄날의 풍경, 그리고 너와 나

nongbu84 2013. 3. 9. 21:33

봄날의 풍경, 그리고 너와 나

 

덜 깬 잠을 깨우며 아침 출근을 합니다. 정문길로 걸어 옵니다. 정문길 양 옆으로 새 순의 연한 빛깔이 펼쳐졌습니다. 연두색으로 엷게 칠한 수채화 한 폭을 닮았습니다. 비라도 온 다음날이면, 새로 돋은 싹들은 그 부드러운 빛깔을 자랑합니다. 소나무가지에 수북하게 쌓인 겨울 눈풍경은 수묵화의 농암으로 태어나지만, 학교 정문에 펼쳐진 봄길 풍경은 엷은 연두색으로 그린 수채화 한 폭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3교시 잠깐 동안의 휴식, 3층 교무실에서 앞산을 바라봅니다. 고개 들어 바라보는 산봉우리 언저리마다 진달래꽃이 뭉개뭉개 피어올랐습니다. 앞산의 진달래 꽃을 보면 1년이 지난 '세월'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초에 입학한 아이들은 벌써 운동장을 달리며 함박 웃음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아이들은 운동장을 내달리며 함성을 질러댑니다. 검게 익은 먹머루같은 눈빛에 세상은 움찔 놀라는 기색이 보입니다. 아이들의 함성과 눈빛에 결국 나뭇가지 끝 꽃봉오리는 망울망울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봄은 아이들의 함박웃음과 함성, 먹머루 닮은 눈빛속에서 더욱 완숙해 집니다.

나는 교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밖에 나가 걷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봄빛 완연한 교정을 걸어 갑니다. 엷은 연두색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새어듭니다. 맑디 맑은 투명한 유리 같습니다. 눈부시지 않아 참 좋습니다. 햇살은 나뭇잎과 어우러져 똘망똘망한 무늬를 수놓고, 알록달록한 몸빼바지 무늬를 길위에 그려 놓습니다. 너무도 선명한 연두빛깔로 맑은 기운을 마음껏 뿜어냅니다. 고개들어 연한 나뭇잎을 보면 하늘이 그대로 보입니다. 온 몸 가득 퍼져 오는 봄볕 햇살이 참 간지럽습니다.

봄에 만난 아이들 또한 내 마음속에 <봄날의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문길에서 만난 아이들은 먼산의 진달래꽃으로 떠났다가 봄볕, 그 찬란한 햇살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은 한 폭의 엷은 수채화였다가 먼 그리움이었다가 간지러운 반가움으로 찾아들었습니다. 봄의 아이들은 내게 풍경으로 다가와서 먼 세월 속으로 떠나더니 이내 간지러운 소식으로 찾아왔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만난 것도 3월의 봄길이었습니다. 정문길을 걸으면서 만났습니다. 그날 아침 출근길, 나는 비온 뒤의 나뭇잎이 만든 풍경을 감상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가방을 둘러매고 땅바닥을 바라 보며 무겁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다가가 그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나 혼자 팔을 아이의 어깨에 올린 탓인지 어깨동무가 어색하였습니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니? "

아이는 말없이 걸어갔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의 어깨에 올린 내 오른 팔이 무척 낯설고 무거웠습니다. 팔을 내리고 말없이 걸었습니다. 아이의 발소리가 무척 투박하게 터덜거렸습니다. 잠시 동안 그렇게 함께 걸었습니다. 갈림길, 아이의 등을 한번 토닥이고 나는 교무실로 향했습니다. 아이는 4층 교실로 올라갔습니다. 아침의 아주 짧은 동행과 아주 잠깐 동안의 어깨 동무, 그렇게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던 내 손길에 아직도 아이등의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듯 합니다.

3교시 한 시간의 수업, 교실에 들어서면 창문 쪽 맨 끝에서 아이는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었습니다. 아이의 시선은 먼산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침묵의 세계, 내가 말을 걸기 조차 힘들 정도로 너무 견고한 껍질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아이는 먼산에 눈길을 주며 나를 자주 외면하였습니다. 눈길을 주었지만 단 한번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간혹 매서운 눈빛만이 나와 그 아이 사이에서 충돌하였습니다.

아이는 먼 산의 산비탈에 위태롭게 피어있는 진달래꽃 같았습니다. 가끔은 짧은 한숨으로 붉게 멍든 가슴을 토해냈습니다. 내가 본 그 아이의 가슴은 멍투성이었습니다. 술중독으로 인한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죽음, 혼자 세상에 내어 던져진 채 아이는 주저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갈 길을 찾을 힘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그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앉아 먼산을 응시하며, 멍든 가슴을 토해내는 한숨뿐이었습니다.

그런 그 아이의 얼굴표정을 보는 것도 몇 번 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볼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주 결석을 하였습니다. 아이의 창문 쪽 의자는 자주 비었습니다. 아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 봄, 멍든 가슴조차도 삶의 일부라고....이 봄, 붉은 진달래꽃은 피멍든 가슴을 활짝 열고 피어 있을 뿐이라고....그렇게 토해낸 붉은 가슴이 아름다운 거라고........ 이 봄에는, 멍든 가슴에서 멍든 가슴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아이는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습니다. 먼 산의 진달래꽃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아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내게 먼 산의 진달래꽃이었습니다. 먼 그리움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가 겪고 있는 아픔은 내게 아주 먼 곳의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의 멍든 가슴은 내게는 옛 추억을 되짚어 보는 일 같았습니다. 나는 아직 <봄날의 풍경이 아이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풍경같은 봄날에도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풍경같은 봄날의 디딤발은 겨울이었음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번 아이는 수업시간에 독백을 읊조리듯, 공책의 빈 여백에 낙서한 듯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먹는 일이다. 밥상에 둘러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는 것이다. 상추쌈을 먹으며 얼굴에 묻은 된장 때문에 실컷 웃어보는 일이다. 이런 일들이 내게는 왜 이렇게 힘뜰까......>

그러더니 잔설이 남은 3월 초의 봄날, 정문길을 따라 퀭한 눈빛 하나 남기고 떠났습니다. 아이의 소식은 풍문으로만 전해졌습니다. 아이는 가구 공장을 전전했으며, 몇 달씩 월급을 주지 않는 세상을 만났으며, 술병이 넘어져 우는 소리를 들으며 꺽꺽 제 울음을 숨겼습니다. 어머니를 다시 만났지만 헤어져 살았던 시간의 어색함을 되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산 1번지 재개발 주택의 단칸 방에서 아이는 벼룩시장의 구직 구인란을 뒤적였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몇 년의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내게는 몇 년의 세월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아이는 봄볕, 그 찬란한 햇살로 찾아왔습니다. 거짓말처럼 결혼청첩장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선생님, 저 결혼 해요. 그 때 멍든 자리가 아주 작아졌고요. 아주 단단해졌어요. 그때 멍이 든 자리에서 삶의 소망이 새싹처럼 돋아났어요. 저 축하해 주실거죠"

봄길에 만났던 그 아이는 수채화 풍경길에서 만나, 먼산 그리움으로 자리잡았다가, 햇볕 찬란한 반가움으로 돌아왔습니다. 봄날의 뒤안길에 올망올망한 햇볕 무늬를 만들며 찾아왔습니다...............................

 

나도 가슴 멍을 뭍고 살아가면서 그 멍든 가슴에서 소망이 싹트길 기다리는 '한 사내'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햇별 찬란한 반가움>으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또 하나의 사람'일 뿐입니다. 이제는 나도 사람들과 서로 잊혀진 얼마 만큼의 세월속에서 멍을 다독이고 옹이를 만드는 방법에 노련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참 맑은 햇살로 세상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봄길에는 언땅을 뚫고 새싹 돋아나는 이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봄풍경에는 멍든 가슴보다는 멍든 가슴에서 소망이 싹트는 모습이 어울립니다. 봄길의 동행은 아무래도 먼 그리움에 지친 어른보다는 간지러운 햇살을 닮은 아이들의 삶이 제격입니다. 다시한번 봄날의 간지러운 연애를 준비해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