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之權-나의 철학

개미와 베짱이를 다시 노래함

nongbu84 2013. 7. 16. 09:33

개미와 베짱이를 다시 노래함


아이들이 즐겨읽는 이솝우화 중에 "개미와 베짱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아주 짧은 혀를 낼름내미듯 싹을 틔으는 봄에도 개미는 일을 하였다. 임산부의 뱃살이 터지듯 팽창의 포만감에 휩싸인 여름에도 개미는 먹이를 온종일 모으고 있었다. 가을, 삶의 무게가 더이상 버틸수 없어 찬바람 한조각으로도 충분히 떨어지는 가을에도 개미들은 줄지어 입에 물고 날랐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 개미들은 그 동안 모아두었던 먹이를 먹이며 낮잠을 즐기며 빛도 없는 어둠속에서 나태와 한가한 시간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개미들은 사는 의미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 기나긴 겨움 밤과 아무 할일 없는 낮의 시간이 무료하고 따분하기만 하였다. 견딜 수가 없었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또 힘겨운 노동의 계절이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생각할 때면 소름이 돋기도 하였다.
개미들이 모여 회의를 하였다. 재미나고 즐거운 일이 없을까 고성이 오가고 손가락질이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 그들은 언젠가 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 밑에서 노래를 부르며 삶을 음미하던 베짱이를 본 일을 기억하는 일이었다.

 

베짱이는 필요한 만큼의 먹이는 스스로 찾아 먹을 줄 알고 있었고 삶의 전부를 옭아맬 수 있는 일에 투자하는 시간을 꼭 필요한 만큼만 하였다. 그 노동의 시간이 지나면 그는 자주 노래를 부르고 삶을 의미하는 재미를 느꼈다. 봄에는 얼었던 냇물의 얼음짱이 깨지는 소리를 따라 따스한 햇살아래 꼬박 꼬박 졸며 지난 겨울 떠난 애인 얼굴을 땅바닥에 그리며 그리움을 느꼈다. 여름에는 발이 푹푹 빠져 먼지투성이가 일어날 정도의 가뭄밭에 물을 주며 그 가문 땅에서 싹이 무럭무럭 성장하는 성장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가을에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은행알 익는 빛깔을 미치도록 사모하였다. 겨울에도 베짱이는 삶이 무의미 하지 않았다. 봄에 겪었던 따스한 햇살의 추억을 되새김질 하며 음미하였고 여름에 스스로 만들었던 노동의 뒷이야기와 시름을 끄집에 내어 달랠 수 있었고 가을에 책갈피에 꽂아두었던 단풍잎들을 바라보며 그 무늬무늬진 상처와 삶의 빛깔과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베짱이에게는 부를 노래가 얼마든지 있었고 긴 겨울밤을 세워 해줄 이야기가 가슴 가득 들어있었다. 베짱이에게는 춥고 검은 어둔 동굴에서도 견딜수 있는 따뜻한 온기를 갖고 있었다.

어릴적 개미와 베짱이를 읽으면서 우리는 부지런한 개미상을 이미지업시키며 근면성실절약 정직한 인간이 되는 다짐을 반복하고, 게으른 베짱이를 욕하면서 삶의 여유와 마음의 풍요로움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 쏟아지는 시대에 이제는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른 베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이제는 노동의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개미와 삶의 향기와 온기를 지닌채 삶을 음미하는 베짱이의 모습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온 일생의 시간과 정성과 땀을 다해 가꾸어온 도시와 건물과 공장과 상품이 이제는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다 못해 인간의 마음까지도 갉아먹고 있다. 사나워질대로 사나워진 인심과 오직 일 밖에 모르는 기계로 전학한채 이제는 습성처럼 아침이면 일터로 향한다. 무조건 부지런하고 절약하고 풍요로워질 마음의 가능성을 잃어버린채 또다시 일하고 일한다.

이제는 삶을 즐길 필요가 있다. 더 풍요로워질 필요가 있다. 마음을 나누고 고단한 삶을 달래고 서로 어깨 걸으면서 말동무하고 걸어간 길을 되돌아보며 음미하고 어디를 향하여 걷고 있는지 반성하고 검토하는 시간의 여유를 지녀야 한다. 노래하는 베짱이의 여유 따뜻한 햇살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사는 베짱이의 마음 길가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에 걸음을 멈추고 울컥 울어보았을 베짱이의 상상력을 닮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개미의 유난스런 부지런과 개같은 성실성으로 일구어 놓은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편리때문에 너무도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인간성이 고갈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마른 장작처럼 바짝 말라버린 마음에 이제는 불을 붙여 그 장작더미를 바라볼 시간을 만들 때가 되었다. 속도와 경쟁, 빠르기와 앞섬, 새로운 것과 눈에 보기 좋은 것이 최선의 가치를 지니는 시대에 이제는 달리던 차에서 내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바라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