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편지함
.1. 빨간 편지함
3층 건물입구로 사람들이 드나듭니다. 이른 새벽 헛기침을 하며 가을로 출근하는 사내가 보입니다. 뒤이어 오이의 상큼한 냄새를 담은 여자 아이가 분홍색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갑니다. 책가방이 고개를 떨구며 끌려가는 모습입니다. 짙은 화장에 허리 굵어진 그 누군가의 아내도 입구를 나섭니다.
모두가 나가버린 오전의 시간, 어항의 물고기가 헤엄치듯 바람이 입 구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벌써 봄이 왔나 봅니다. 꽃샘추위가 입구를 막아서지만 먼 산 진달래꽃도 한 무더기 눈인사를 보내줍니다. 여우 오줌 같은 햇볕이 찔끔 찔끔 따사로움을 줍니다. 약간의 한가로운 시간입니다.
점심때가 되면 된장냄새가 납니다. 갓 결혼한 새댁이 처음으로 끓인 듯 냄새만 진동을 합니다. 청소하는 소리도 들리고 전화기를 붙들고 수다를 떠는 소리도 들립니다. 잠시 후 책가방을 메고 1층부터 "엄마!" 그 정겨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꼬마아이가 보입니다. 고녀석이 참 귀엽습니다. 자전거 한대가 바퀴자국을 남기며 들어옵니다. 자전거는 꼭 자국을 남깁니다. 그 이어진 길, 긴 뱀 긴 밧줄처럼 흐느적거리며 들어옵니다. 세 발 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보는 일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자전거는 늘 떠날 준비를 합니다. 입구에 서서 발을 묶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달려 나갈 기세입니다. 저 자전거가 녹슬어 추억이 되는 날도 올 것입니다.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내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옵니다. 우편배달부는 가방에서 한 뭉치의 편지를 꺼냅니다. 101호 약사 집에는 아픈 사람들의 소식이 자주 전해옵니다. 102호 택시기사 아저씨한테는 친목회 모임소식이 전해집니다. 201호 할머니한테는 부고가 전해옵니다. 202호 신혼집에는 결혼식장의 안내도와 교통편이 친절하게 전해집니다. 301호 교사 집에는 군대 간 제자의 편지가 옵니다. 302호 교 회다니는 신자의 집에는 자주 하느님의 편지가 전해 옵니다.
우편배달부는 내 주머니에 불쑥 불쑥 손을 집어넣습니다. 그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어 자주 웃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기다립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를 한 번씩 처다 볼 사람들의 얼굴을 기다립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소식은 먼 곳에서 오지만 슬픔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중년의 사내는 능굴 맞게 내 뱃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습니다. 그러더니 얼굴표정이 굳어집니다. 카드 연체로 인한 삶의 고단함입니다. 신혼집 새색시는 연분홍 꽃 연서를 찾아갑니다. 아침에 남편이 내게 숨겨둔 편지입니다. 간지럽습니다. 할머니는 겨우 손끝으로 내 주머니를 찢어져라 당깁니다. 이러다간 내 주머니가 찢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겨울의 일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녀석이 편지한통을 들고 제 친정집으로 달려간 일이 있습니다. 겨울방학숙제로 담임선생님께 편지쓰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그 편지를 들고 나간 다음 날 부터 아이는 매일 내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손을 넣었다가 내 주머니를 열어보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내 안을 살핍니다. 그러기를 한 달 동안이나 합니다. 아이는 갈수록 얼굴 표정이 많이 실망하는 표정입니다. 아마도 답장을 기다리는 듯합니다.
아이가 보낸 편지는 담임선생님의 칭찬내용이 들어있고, 그래서 자기가 선생님의 보디가드란 자부심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던 날 꼭 안아주던 엄마의 품 같은 선생님의 품을 잊지 못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답장을 기다리며 아이는 내 주머니가 닳도록 뒤져봅니다.
아이의 얼굴에는 선생님의 답장을 기다리며 기대에 부푼 표정이 그득합니다. 점점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느라 안쓰럽습니다. 아이에게 다시 편지를 쓰라며 이야기합니다. 선생님께 전화 걸어 답장을 써주세요 부탁할까 고민합니다. 선생님 대신 답장을 보낼까 고민합니다. 아이의 빨간 얼굴만큼 내 몸도 닳아 오르고 있습니다.
답장을 기다리는 내 마음만큼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내가 빨간 스웨터를 자주 입는 것은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이 진분홍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2. 사람의 길, 사랑의 길
<용기를 내어 배가 지금 머물러 있는 항구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바다에도 나아가지 못하리라. 배는 항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항구에 정착하는 편안을 위해 서 있는 것이 아니니라. 용기를 내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편안과 편리와 풍요를 버리지 않는다면, 결코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리라.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지 편안과 풍요를 소비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리라.>
밤꽃 핀 유월입니다. 이른 아침 학교 뒷산 길을 따라 출근합니다. 이 길로 수많은 계절이 지나갔고, 그 계절을 따라 수많은 인연이 찾아왔습니다. 이 길로 생명이 가득 찬 아이들의 웃음을 만났으며, 여드름 피어오른 사춘기 아이들의 풋사랑도 보았습니다. 마흔의 외로움도 찾아왔으며, 아내의 눈주름처럼 늙은 겨울이 차갑게 다가왔습니다.
지금도 내 삶이 걷고 있습니다. 봄에는 아카시아 꽃 향을 맡으며 걷고, 여름에는 짙은 풀냄새를 맡으며 걸었습니다. 가을에는 낙엽 태우는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걷고, 겨울에는 흰 여백의 공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습니다. 겨울을 걸으면서 나목으로 침묵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이 길의 봄, 봄에는 연한 쑥이 자라는 오전의 햇살이 정겹습니다.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져 만든 오후의 그늘이 시원합니다. 그리고 가을은 낙엽 타는 저녁시간의 매캐한 연기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겨울은 흰 눈이 만들어주는 여백의 새벽길이 참 좋습니다.
이 길을 혼자 자주 걷습니다. 혼자 걸으면서 오줌이 바짓가랑이를 타고 흐르던 유년의 길을 생각합니다. 맨 살에 착 달라붙어 뜨겁던, 결국은 엉기적거리며 걸었던 유년의 길입니다. 신발을 벗어 해에게 구경시켜주던 초등학교 시절, 집에 돌아오는 길도 생각납니다. 신발 속에는 꽃잎이 찾아 들었으며, 송사리가 자랐고, 무지개가 간혹 찾아왔습니다. 고무신을 뒤집어 귀에 걸면 먼 바닷가의 고동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끔 늦은 밤 혼자 걸을 때면 까만 밤에도 세상이 맵던 청년시절, 집으로 돌아오는 하숙집 골목을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길은 좋은 사람과 함께 걸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봄에 싹트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와 손을 잡고 걸을 때가 참 좋습니다. 내 손안에서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이 꼼지락 거리면 참 간지럽습니다. 여름은 소낙비를 피해 동료와 함께 나무 밑에 서 있을 때가 정겹습니다. 동료는 비에 젖었지만 더운 김을 모락모락 피어 올리는 등짝을 보여줍니다. 소낙비 속에서도 쩌렁쩌렁 울어대는 매미 울음을 닮았습니다. 믿음직한 등짝 입니다. 가을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사랑하는 연인과 걸으면 아름답습니다. 연인의 머리빛깔을 닮은 누런 들녘을 구경하면서 바람의 넘실대는 춤사위를 바라봅니다. 슬픔은 춤사위로 녹여내면서 연인의 허리춤을 안으면 참 아늑합니다. 겨울은 이미 눈밭은 걸은 사람들의 발자욱을 구경하면서 저만치 내 뒤에 오는 또 다른 사람과 함께 걷습니다. 이 길을 이미 누군가는 걸었고, 지금은 내가 걷고, 내 뒤를 이어 그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습니다. 이 길은 그 누군가에게서 와서 그 누군가에게 이어지는 길입니다. 좋은 이웃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걷는 일만큼 좋은 선택은 없습니다.
이 길을 걷다보면 푯대 하나를 발견합니다. 높이 치솟아 오른 푯대에는 <生本之仁> 네 글귀가 보입니다. 깃발처럼 펄럭입니다. 삶의 바탕은 착함이 아니라 <삶의 근본은 사랑>입니다. 착함의 근원은 사랑합니다. 착하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므로 착한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사람들)의 도움과 지지 없이 이 무거운 책임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 길을 걷다보면 이정표 하나를 발견합니다. 전후좌우의 길안내가 되어있는 이정표에는 단 하나만이 새겨져 있습니다. <상선약수>입니다. 흘러흘러 낮은 곳으로 향합니다. 사람의 마을로 향하고 나무의 뿌리를 타고 꽃으로 향합니다. 땅 속 스며들며 암흑의 빈틈을 타고 흐르며 만물의 생멸변화를 도와줍니다. 없는 길은 내어 가고 막히면 돌아갑니다. 수직상승의 꿈은 수평하강의 꿈의 원리로 귀환합니다.
"더 높이 올라올라 가려는, 그래서 화려하고 찬란한 수직 상승의 우월과 승리의 신화를 가지고 과연 아주 먼 길을 오랫동안 갈 수 있을까?"
이 길을 걷다보면 지도에는 없는 사람의 길이 보입니다. 지도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無住相布施, 무주상보시>도움이 아니라 주는 것이 삶입니다. 줌이 사는 이유입니다. 삶의 근거는 사랑입니다.
"사랑받는 것보다는 사랑함이 훨씬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