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선언문
하나. <우리는 늘 처음처럼 살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은 늘 처음처럼 하루 하루를 사고 싶습니다.
두울. <우리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한 해 한 해 살고 싶습니다>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족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늘 견뎌낼 것입니다.
세엣. <우리는 나무처럼 깨어있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깨어 있던 나무가 말했습니다.
“두려워 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라고......
우리 가족은 서로 해치지 않고 서로에게 행복이 되는 사람들이고 싶습니다.
네엣. <우리는 흙 내음 같은 고향의 마음을 그리워합니다>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모든 쇠붙이는 가야 합니다.
우리 가족은 늘 자연을 함께 하며 살고 싶습니다.
다섯. <우리는 여럿이 함께 가는 가족입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험한 길도 즐겁습니다.
우리 가족은 어려울수록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희망이고 싶습니다.
여섯. <우리는 나무숲처럼 살고 싶은 가족입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숲이 되어 서로를 지키자”
우리 가족이 이 세상을 살 때는 서로 보듬고 안아 큰 숲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사람 숲을 이루어 서로 포용하며 살고 싶습니다.
일곱. <우리는 푸른 산하처럼 땀 흘리며 살고 싶습니다>
푸른 산하 출렁이는 그대 눈동자에
밝은 이마 소금 땀으로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땀흘리며 사는 사람들이고 싶습니다.
여덟. <우리는 늘 함께 가는 가족입니다>
진달래 꽃길 따라 불타는 단풍 따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은 늘 함께 하고 싶습니다.
아홉. <우리는 넷이면서도 하나인 가족입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우리 가족은 대화를 통해 서로 하나 되는 길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여얼. <우리는 더불어 한길을 갑니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서로 같은 곳을 보면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열하나. <우리는 서로를 사랑합니다>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압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압니다.
천년을 두고 오는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압니다.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한 알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압니다.
우리 가족은 서로를 늘 사랑합니다.
열두울. <나는 요즘 걷고 싶습니다>
작년 여름, 비로 다 내렸기 때문인지 눈이 인색한 겨울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눈 뒤끝의 매서운 추위는 죄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데도
눈 한 번 찐하게 안 오나 젊은 친구들 기다려 쌓더니
얼마 전 사흘 내리 눈 내리는 날
기어이 운동장 구석에 눈사람 하나 세웠습니다.
옥 뜰에 서있는 눈사람 연탄 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 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우리 가족은 서로가 혼자 있고 싶을 때를 인정하고 싶습니다.
.....신영복 교수의 글을 인용해서 우리 가족의 모습을 엮어 보았습니다.
2000. 09. 07 여름지기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