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步萬里-나의 삶

우신에 있는 동안 꼭 해 보아야 할 12가지(우신 추억 12)

nongbu84 2013. 9. 13. 13:23

우신에 있는 동안 꼭 해 보아야 할 12가지(우신 추억 12)

 

  

1. 1월 : 5층 교실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며 사라지는 아름다움 발견하기

 

본관 건물에 있는 5층 빈 교실에서 창밖을 봅니다. 함박눈이 토라진 눈을 크게 뜨고 껌벅껌벅 내립니다. 아침에는 동쪽 하늘의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소 혓바닥처럼 불쑥 솟아오르는 붉은 기운이 창가에 비칠 때 따뜻한 기운을 받습니다.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를 해가 떠오른 창 쪽으로 돌려 그저 말없이 희망 담긴 기운을 받았던 아침 조회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점심 때 운동장은 비어있습니다. 빈 공간을 채우는 바람 부는 소리가 좋습니다. 황량한 사막 같은 마음에도 바람이 붑니다.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교육의 길을 걸었던 외로운 삶의 길이 보입니다. 섣부른 희망과 오만한 몽상과 막연한 기대만을 이야기할 수도 없고, 사막을 걷다 쓰러져간 수많은 유골만을 보여줄 수도 없었던 그동안의 교사의 길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묵묵히 세상이 부여한 삶의 역할을 다할 뿐입니다. 찬란함도 화려함도 초라함도 누추함도 없는 길을 묵묵히 걸을 뿐입니다.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주어지는 보상 없어도 이름 없이 명예도 없이 그저 길을 걸을 뿐입니다. 단 한 사람도 사랑한 적 없는 사막 같은 마음을 반성하며 걸어갑니다. 저녁에는 서쪽으로 넘어가는 노을을 볼 수 있습니다. 노을에 사라져간 것들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수줍던 첫사랑이 찾아왔다가 사라지고, 치기 어린 열정이 가슴 가득 사무쳤다가 사라지면서 아이들과 함께 겪은 굴곡과 사연이 찾아옵니다. 함께 나누었던 아픔과 슬픔, 함께 나누지 못했던 외로움이 찾아옵니다. 노을을 보면서 슬픔과 아픔, 외로움을 날려 보냅니다.

 

1월은 텅 빈 공간에 바람이 휑하니 부는 시간입니다. 1월 겨울방학 기간에 창밖 빈 운동장을 보며 떠남과 만남의 관계를 생각합니다. 떠나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할 수 없고, 만나면 헤어지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을 생각합니다. 마음에 그려진 넓은 운동장에서 떠나간 아이들이 한 없이 뛰어 놀고, 새로운 아이들이 정문으로 걸어옵니다.

 

2. 2월 : 눈 위를 걸어보며 교육의 의미 발견하기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새로 오신 선생님과 첫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새로 오신 선생님과 식당에서 커피 한잔을 사들고 운동장벤치로 걸었습니다. 눈은 녹지 않은 채 꽃샘추위에 다시 얼어붙어 걸을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났습니다. 마른 나무 가지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운동장 가의 벤치에 커피 잔을 놓고 잠시 동안 말없이 드넓은 운동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새로 오신 선생님에게 함박 웃음꽃 활짝 핀 운동장의 모습보다는 찬바람 휘몰아치는 운동장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먹머루빛 아이들의 눈망울보다는 세파에 찬 눈물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잔디가 깔린 운동장보다는 흙먼지 속에서 땀 흘려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미래의 아름다운 교육보다는 오늘 이 순간 이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뛰면서 땀 흘렸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아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 등에 지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잠시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자꾸 이 운동장을 걷다가 넘어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넘어진 아이들 때문에 자꾸 넘어지는 교사들의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들 스스로가 가슴 부푼 희망을 만들어 나가기 전까지 미래의 환상에 속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들 내부에 숲의 포용을 만들며 걷기까지 다른 공간의 울창한 숲속에 기만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운동장은 잔디가 없고 흙먼지 일어나며 넘어지면 무릎이 까지고 팔꿈치에 상처가 나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을 함께 걸어갈 새로운 선생님이었습니다. 섣불리 희망과 사랑을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벤치에 놓인 커피 잔이 차갑게 식었습니다. 커피 잔을 잡은 손등마저 얼어오고 있었습니다. 언 손으로 악수를 나누며 우리는 따뜻한 온기를 느꼈습니다. 찬 손을 내밀어 서로의 손을 잡으면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졌습니다. 언 손에 따뜻한 온기를 지필 수 있는 방법을 그 때 알았습니다. 언 손끼리 손잡으면 따뜻한 온기가 모닥불처럼 솟아오른다는 것을.........

 

2월은 잔설이 남아 다시 녹는 시간입니다. 그 위를 걸어가면 바스락 부서지는 소리가 납니다. 그 위를 걸어 수많은 아이들의 눈물이 얼룩진 운동장으로 가면 휑한 바람이 운동장 트랙을 이어달리기 하고 있습니다. 그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새로 오신 선생님들과 첫 만남의 시간을 가져 봅니다. 잠시 동안 말없이 바라보시면 됩니다. 너무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운동장 가득 얼룩진 아픔과 슬픔을 함께 바라보시면 됩니다. 그 아픔과 슬픔에 지쳐 사라진 교사들의 뒷모습을 함께 생각하면 됩니다. 그릇된 행동보다 부당한 고통을 참아냈던 교사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들 스스로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사막을 떠나는 낙타처럼 빈 운동장을 내 달릴 체력과 심력을 만들 때까지 결코 이 운동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 됩니다. 그리고 언 손 내밀어 악수하며 잔설 남은 길을 함께 걸어가면 됩니다. 2월은 첫 만남의 시간입니다. 새로 오신 분들과 첫 만남을 갖고 3월 아이들과 만남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 때는 빈 운동장을 바라보면 그 운동장에 남은 잔흔을 보면 됩니다.

 

2월 편지 : “교사되려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세상에 상처하나 간직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생명이 하나라도 있을까? 나무는 바람에 가지가 찢기는 상처를 안고 살며 그 상처를 감싸 안으며 옹이를 만든단다. 새는 바람에 깃털에 뽑히고 날개 죽지 휘청거리는 상처를 안고 날개짓을 훈련하며 살아간단다. 목련꽃은 봄비에 후두둑 꽃잎을 떨구며 화려했던 잠시의 시절을 안고 살아간단다. 거미는 제 몸속의 실을 뽑아내어 거미줄을 만들고 그 거미줄이 뒤엉키는 수고로움 끝에 겨우 먹이 하나 얻으면서 살아간단다. 연어는 제 태어난 고향으로 뒤돌아오는 모천회귀본능으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면서 상처투성이가 되고 결국은 알을 낳고 생애를 마감한단다. 사람도 가슴에 꼭꼭 응어리진 아픔과 슬픔을 안고 자기의 꿈을 가꾸며 살아간단다.

너도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가슴에 아픔하나를 묻고 살아가는 구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어디론가 떠나셨고, 그이후로 초등학교 졸업식 때 어머니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살았다고 했지. 네 마음에 어머니가 사라진 빈자리가 움푹 패인 모습이 보인단다.

사람 사이란 참으로 묘한 것 같구나. 헤어져서 문제를 풀어야 할 관계가 있고, 헤어져도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사람관계가 있고.........전혀 모르는 남과 함께 친구가 되거나 애인이 되어 살아가다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헤어짐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단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결코 헤어져도 남이 될 수 없는 사이란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피로 맺어진 혈연의 관계이고 운명을 나누는 필연의 관계란다. 부모님이 미워 집을 가출한다고 하여 내 부모가 아닌 것이 아니란다. 그만큼 헤어 질래야 헤어질 수 없는 인간관계란다. 헤어질 수 없는 필연의 관계에서 서로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란다.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고통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아픔이며 미움이란다.

그러므로 헤어질 수 없는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미워하는 방법보다는 이해하고 인정하는 방법이 현명 하단다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상대의 단점과 실수까지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일이란다. 특히 부모님과 자식의 관계에서는 부모님의 단점과 아픔과 슬픔까지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란다. 내 부모님이 지닌 장점은 자식인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좋아하고 인정할 수 있단다. 하지만 내 부모님의 단점은 자식인 나만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단다.

부모님도 알고 보면 완전한 존재가 아니란다. 그냥 실수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아픔과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란다. 평범한 사람이란다. 부모님도 처음해보는 일 앞에서 주저하며 실패할 까 두려워하고 망설이는 존재란다. 부모님도 특별하게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 당신 인생을 살면서 부끄러움과 용기를 함께 지니고 살아간단다. 바로 부모님의 그러한 평범함과 부끄러움과 아픔과 슬픔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식뿐이란다.

사람은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고, 늘 실수와 시행착오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듯 부모님도 바로 그러한 평범한 분이란다. 다만 아들의 삶이 행복하고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늘 정성을 다하면서 산단다. 또한 00이 너도 누군가로부터 완전한 존재이기를 요구받는다면 견딜 수 없듯, 부모님도 모든 면에서 완전할 수 없고 부족함으로 살며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존재란다. 부모님의 실수도 알고 보면 네 삶으로 이어지는 삶의 일부분이란다. 바로 네 삶의 일부분으로 이어지고 네 삶으로 파고든 모습 속에는 적지 않게 부모님의 모습이 들어있단다 .네 안으로 파고든 부모님의 아픈 모습도 알고 보면 네 삶이란다. 그 아픔까지도 꼭 껴안고 사랑하는 일이 현명하단다.

부모님의 인생이 네게로 이어지듯 네 인생 또한 그 누군가의 인생으로 이어지는 법이란다. 교사가 되면 그런 느낌을 더욱 많이 받는단다. 교사란 바로 자신의 삶과 인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란다. 말로써 가르치는 직업이 아니란 삶으로 증명하고 실천하여 아이들 스스로 배우도록 하는 일이란다. 너는 살아가면서 분명 그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스승으로 살아갈 것이란다. 너는 분명 그 누군가의 꿈이 되고 그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존재란다. 너는 살면서 너의 말 한마디와 행동으로 그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줄 수 있는 충분한 사람이란다. 네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이세상은 좀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미를 지닌단다. 네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누군가의 삶이 행복해지고 아름답고 훌륭해 질 수 있단다. 운경이 바로 너는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에 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단다.

너는 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능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단다. 너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사람이란다. 네 안에는 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줄 빛이 한가득 가슴에 숨어있단다. 너는 충분히 이세상과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단다.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 세상이 너의 능력을 간절히 원했고 이 세상 사람들이 너를 간절히 필요로 했기 때문이란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운경이 네가 맡아야 할 역할이 있고 네 인생전체를 통해서 꼭 이루어야 할 꿈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란다.

네 인생을 통하여 너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지. 이제 네게는 그 소망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애쓰고 공을 들이고 정성을 쏟는 일만이 남았단다. 네 인생의 꿈은 어찌 보면 네 인생의 미래에서 빌려온 빚같은 것이란다. 꼭 되갚아야 할 의무가 주어진 것이란다. 네 인생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네 스스로의 노력과 정성밖에 없단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냥 이루어지는 법은 없단다. 온갖 정성과 땀만이 그일을 이룰 수 있게 한단다.

세상에 행운이란 없단다. 행운은 사람들의 믿음일 뿐이지 현실에서 가능성을 현실로 증명하는 방법은 땀의 양과 정성을 들이는 시간의 양에 달려있단다. 부단히 노력하고 정성을 들이고 아주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단다. 교사가 되고 싶다는 너의 꿈 또한 너의 땀으로 이룰 것이란다. 교사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앞으로 공부하고 살면서 만들어가야 한단다. 직접 네가 겪은 삶의 경험들 또한 너를 가르치고 너를 교사로 만드는 교사가 될 것이며 네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네가 가야할 교사의 길을 가르쳐 주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할 것이란다. 또 책을 통한 간접적 경험 또한 네 친구들처럼 너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란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비추어진 네 삶을 늘 바라보면 반성하고 검토하는 삶을 살아가거라.

교사란 늘 간이 의자 같은 역할이란다. 삶에 지친 아이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전철역의 간이 의자 같은 교사의 역할이 있고, 옳지 못함에 용기 있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 또한 필요하단다. 교사란 늘 아이들 스스로가 행복하고 훌륭해지도록 좋은 일을 선택할 줄 알며 옳지 못한 일에 협조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하루하루의 시간과 삶의 순간에 정성을 다하는 일이란다.

 

 

 

3. 3월 : 봄 학교 길 산책하며 풍경이 되어보기

 

산책하며 걷는 그 사람은 참 풍경 같은 사람입니다. 까치집 쪽 틀고 서 있는 나무가 풍경이 아닙니다. 그 나무 사이를 걷는 사람이 풍경입니다. 나무에게 풍경 같은 사람,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알록달록한 햇살 무늬 때문에 어지럽습니다. 그 밑을 걷다보면 이 길로 찾아왔다가 이 길로 떠난 아이들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한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내게 매와 체벌이 아닌 평화의 교육방법을 알려준 아이입니다. 매를 댈 때 그 아이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매를 맞아서 변화될 아이였으면 제 종아리 제가 걷고 맞겠습니다. 하지만 매 맞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아이는 문을 밀치고 떠났습니다. 그 아이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거친 바람을 맞고 온 것처럼 아이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습니다. 그 아이와 함께 통통하게 살찐 봄 햇살을 받고 걸었습니다. 함께 새 순의 맑은 기운을 느꼈습니다. 함께 운동장 가득 퍼진 고양이 울음을 닮은 봄바람 소리를 들었습니다. 함께 걸으며 흐드러진 목련꽃의 낙화가 남긴 비릿한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 아이는 다시 떠났습니다. 떠나면서 내게 말했습니다. " 선생님! 저는 풍경같이 맑은 사람이 좋습니다."

 

3월은 다리 달린 봄볕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따뜻하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有脚陽春(유각양춘)같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겨울 지나고 봄이 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학교 등굣길을 걸으면서 따뜻한 햇살을 받고 따뜻한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고 아이들을 만나러 갈 수 있습니다. 3월은 아이들을 가슴에 담고 봄 풍경의 한 자락이 되는 시간입니다. 새싹처럼 돋는 걸음으로 산책하며 목련처럼 화사한 웃음으로 따뜻한 온기를 만들며 산책하는 시간입니다.

 

4. 4월 : 목련꽃 피었을 때 목련나무 선물하기

 

이 학교를 떠난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학교에 있는 나무를 선물하였습니다. 행정실 앞 목련꽃 나무는 새로 온 어느 선생님에게 선물하였습니다. 누구도 소유하지 못하는 나무를 선물로 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선물만큼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나무를 선물로 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은 환경 속에서 좋은 일을 하면서 사는 행복한 시간을 주었습니다. 행복한 시간 속에서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질펀한 진흙 밭을 걷는 일과 같습니다. 행복한 학교 울타리 너머까지 행복하려면 행복한 일을 갖고 만나야합니다.

 

4월은 목련 꽃이 화사하게 만개한 시간입니다.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시들고 화려한 꽃은 향이 없습니다. 서둘러 피지 말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은은한 향기가 울리는 꽃을 피웠으면 합니다. 4월에는 화단 가득 서 있는 목련나무 하나 아이들에게 선물했으면 합니다. 환한 낮에 화사하게 핀 목련은 최고의 순간으로 피어 최고의 상태로 세상을 만납니다. 누구나 최고의 순간에 최고의 상태로 순간순간의 존재하기를 기원합니다.

 

世界一花 萬生一家 爲他爲己 自他不二(세계일화, 만생일가, 위타위기, 자타불이), 이세상은 한송이 꽃이며, 모든 생명은 내 가족입니다. 남을 위한 일이 나를 위한 일이니 나와 남은 본래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순간은 인생 최고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번의 인연입니다. 모든 순간에 만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자연과 함께 하는 기회를 가지면 삶입니다. 4월은 자연을 선물하며 그 생명력을 느낄 일입니다.

 

5. 5월 : 바르지 않음 비판하기,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영혼을 울려보기

 

내가 직접 가담하지 않았어도 책임지는 용기와 내가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어도 비판하는 용기는 온당한 일입니다. 교사의 이름으로 아이들의 행복을 뺏는 일을 비판하고 교사의 이름으로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함께 책임지는 일은 온당한 도덕성입니다. 나무숲에 머물다 나오면 마음이 넓어지고 키 큰 미루나무 숲길을 지나면 키가 크고 깊은 강을 건너가면 영혼이 깊어집니다.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를 흔드는 한 얼굴 때문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는 일을 겪어보면 혼이 맑아집니다. 사람 때문에 마음아파하고 사람 때문에 슬퍼보면 슬픔과 아픔을 등에 지고 걸어가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을 짤 수 있다면 추운 길목에서서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한 목숨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삶은 사랑함입니다.

“나의 아버지”란 주제로 수업을 합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거대한 산 같았고 큰 거인 같았던 아버지가 이제는 등 굽은 뒷모습을 지닌 한 사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이 세상을 사는 또 하나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40년 이상을 이 세상 걸어 다니면서 발 뒷굼치는 굳은 살로 겹겹이 굳었고, 손에는 매듭이 자꾸 만들어졌습니다.

“나의 어머니”란 주제로 수업을 합니다. 어머니가 얼굴 만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거친 손이 얼굴에 닿으면 가슴이 에입니다. 그 손은 등을 긁으면 가장 시원한 손입니다. 평생을 손톱한 번 깎은 적이 없습니다. 닳고 닳은 손톱입니다. 그 손톱에도 낮달은 떠서 슬픕니다.

 

5월은 교사의 이름으로 진리를 보전합니다. 5월은 내가 직접 가담하지 않았어도 직접 책임지는 용기를 발휘할 시간입니다. 5월은 내가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어도 나서서 비판해야 할 옳지 않음이 있습니다. 5월은 교사의 마음에 진리를 담고, 아이들의 영혼으로 파고드는 시간입니다. 삶을 이야기하고, 살아있는 삶의 수업시간을 만들고 영혼과 영혼이 넘나드는 강물소리를 들어야합니다.

 

6. 6월 : 눈길을 트고 말길을 트고 마음의 길 만들기

 

6월은 내가 사람들 마음에 걸어 들어가는 길을 만들고 사람들이 내 마음으로 걸어 들어오는 길을 만들고 싶은 시간입니다. 먼저 눈길을 트고 말길을 만들어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찾아 떠나고,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말을 건네고, 한 아픔이 다른 아픔을 어루만지는 마음의 길을 만드는 시간입니다. 빨리 지나는 시간이 멈추는 오후의 시간에 나무 그늘 밑 벤치에 앉아 시집을 읽고 게으름을 찬양하며 사람마음으로 가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 나도 느리게 사는 오후 2시의 풍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후 2시의 풍경이 되면 저녁 어둠이 내리는 시간의 연애를 그리워하는 행복한 시간이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행복이 찾아옵니다.

 

6월에는 사람의 마음에 흘러드는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앞산이 그림자로 넘어져 쓰러질 때 한껏 팔 벌려 안아주고 나무숲이 황소울음으로 소리 지를 때 한껏 귀담아 가슴으로 덮는 어머니의 품을 닮고 싶습니다. 정말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흘러나와 다시 사람 사는 세상으로 흘러들고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흘러 나와 다시 사람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살아 온 세월처럼 마음과 마음의 물꼬를 트는 물길이 되고 싶습니다.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전봇대에 붙은 광고지가 무섭게 울어대는 새벽 녘 술 취한 자의 발걸음으로 타박타박 태어나고 가슴 뻐근한 사랑을 잃은 자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흔한 유행가 가락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어제는 비가 내렸습니다. 군대 시절 흠씬 두들겨 맞은 일이 늘 악몽으로 되살아나듯 구슬프게 비가 내렸던 어제는 너무도 선명하게 첫사랑의 아픔이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그 계집애의 목소리마저도 가물가물할 뿐인데도 그 아픔만은 여전히 가슴을 훑고 있습니다. 세월의 상처라 여기고 흐르는 세월 속으로 실어 보내기에는 아직 미련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겠지요.

 

당신의 한 세월 속에도 첫 눈물 내리는 날이 있었을 것이고 첫 눈물 내리는 날 가슴을 할퀴는 아픔이 있었을 테지요. 그 아픔이 찾아올 때마다 당신은 늘 군불을 지피며 눈물을 흘렸을 테지요. 설령 아버지가 왜 그러느냐 물을라치면 당신은 먼저 군불이 맵다며 한 발 물러나 앉았겠지요. 생활의 땀내가 배인 당신 손을 들어 얼굴 한 번 쓸어 내렸겠지요. 이제는 저도 한 발 물러나 앉고 싶습니다. 너무 앞서려 애썼던 시간인 듯 합니다. 주린 배를 채우려는 산 짐승처럼 세상의 정글 속에서 헤맸던 시간인 듯 합니다. 욕정을 내뿜는 외양간에 매인 수소처럼 이리 저리 세상을 치고받았지만 오히려 고삐만이 옥죄어 올뿐입니다. 이제는 물러나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 앉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이 되고 그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6월에는 강물처럼 흐르며 살고 싶을 뿐입니다.

 

7. 7월 : 사람의 마음에 나를 비추어 보고 삶의 지혜 배우기

 

7월은 성찰 없이 성장하는 여름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不鏡於水, 而鏡於人(불경어수, 이경어인)입니다.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거울로 삼아 자기를 반성하는 시간입니다. 성찰과 반성 없는 성장은 추운 겨울 나목으로 서서 손들고 벌 받습니다.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살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내 등에 짊어지고 친구가 되어야 할 시간입니다. 우산 씌워주는 베품보다는 함께 비를 맞는 선택을 해야할 시간입니다. 처지를 함께 겪고 뜻을 나누며, 좋은 이웃과 좋은 일을 함께 하면서 걸어야 할 시간입니다.

 

우물에 비친 내 모습을 봅니다. 우물에 비친 사내가 너무 미워 돌아서 보지만 다시 그리워 찾아갑니다.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내의 등 뒤로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비친 그가 안타깝습니다. 초췌한 얼굴의 걱정과 근심, 욕심과 두려움을 읽습니다. 돌아서서 도망쳐 보지만 다시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7월은 물에 얼굴을 비추는 일보다 사람의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반성합니다. 마음 밭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뽑고 흙을 북돋아 알곡의 양식을 가꿉니다. 매일 마음 밭을 찾아가 정성을 들입니다. 내 마음의 발자국 소리에 잡초는 놀랍니다.

 

登高山 望四海(높은 산에 올라 넓은 바다를 바다 보는 일), 반성은 높은 산에 올라 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일처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혀 주고 멀리 볼 수 있게 만듭니다. 높이 올라 넓게 바라볼 때 인생에서 직면하는 슬픔과 아픔이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 잡습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반성적 사고와 능력은 인생을 넓혀주는 길입니다. 넓게 바라볼 때 한 자리에서 깊게 체험했던 삶의 진면들이 그 의미를 지니며 깊이를 안겨줍니다. 우물을 퍼 올려야 우물이 계속 샘솟듯, 생각하고 반성해야 삶이 풍요로워 집니다.

 

바다를 바라보면 살다가 맷돌 만하게 크게 보이는 나만의 아픔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아프기도 하지만 내 아픔을 통해 옆 사람의 아픔을 느끼는 공감과 소통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바다의 넓이와 받아들임을 읽으면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것도 겪어낼 수 있으며, 상대의 슬픔과 아픔조차도 내 등에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삶의 기회를 줍니다. 7월은 자연에서 배울 일입니다.

 

8. 8월 : 아이들과 함께 도보 여행하기

 

길을 걷는 일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살이를 닮았습니다. 걷다보면 산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좁은 길을 지나고 넓은 길을 걷기도 합니다. 평편한 길을 걷기도 하고 높낮이가 심한 길을 걷기도 합니다. 자갈이 깔린 황무지를 걷기도 하고 포장된 길을 걷기도 합니다. 우리 사는 일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쉽게 지나는 일이 있으면 힘들게 지나는 일도 있습니다. 걷는다는 일은 자발적으로 가난과 불편을 선택하는 일이고, 채운 것을 비워야 하며, 허물과 껍질을 벗어야 합니다. 길은 욕심과 걱정으로 걸을 수 없습니다. 욕심과 근심으로 길을 걸으면 넘어지고 지칩니다. 무리하고 상처를 얻습니다. 내가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을 수 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허락 받은 만큼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욕심과 걱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마음으로 살 뿐입니다. 욕심과 걱정으로 채운 마음은 잡초만 무성할 뿐 나누어줄 곡식 한 톨 가꿀 수 없습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사랑과 정성으로 살 뿐입니다. 욕심과 근심 걱정은 사랑과 정성의 삶을 빼앗는 도둑입니다. 욕심과 근심이 삶의 도둑입니다. 욕심과 근심으로 살면 왜곡과 간섭과 질시가 가득합니다. 미워하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걷는다는 일은 자발적으로 가난과 불편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걸으면 얼굴과 몸에서 땀이 흐릅니다. 발바닥은 뜨거워지고 물집이 잡히기도 합니다. 걸을 때 무겁고 필요 없는 것들은 몸에 무리를 줍니다.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인정합니다. 배낭에 넣은 많은 음식은 배를 아프게 하고, 지나치게 많이 마신 물은 갈증을 더 일으킵니다. 꼭 그만큼의 물과 음식만을 몸에서 허락합니다. 걷는다는 것은 욕심으로 채운 무거운 것들을 버리고, 근심 걱정으로 채운 불안한 것들을 버려 가난한 마음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걷는 일은 가난한 마음을 배우며 내 몸에 허락된 만큼 정성을 다하여 걷는 일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가득 채운 것들을 버리는 일입니다. 욕심으로 채운 것들을 비우고, 걱정으로 매듭 지웠던 것들을 풀고, 집착으로 움켜쥐었던 것들을 놓는 일입니다. 채운 것들을 비워야 들어올 수 있는 빈자리가 생깁니다. 마음에 채워 불안하게 지켜야하는 것들을 버리고,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채워 불편한 것들을 비우고, 내 것이 아닌 것들을 채워 헛부른 배를 꺼야 합니다. 걷는다는 것은 내 몸을 비우고 내 마음을 비워 비로소 자기를 만나는 것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부른 헛배를 끄고 허명을 버리고 욕심과 근심을 버려 가벼운 자기를 만나는 일입니다.

 

걷는다는 일은 허물을 벗는 일입니다. 세상 움켜쥘 손아귀의 힘은 없어도, 세상의 중심에서 소리 질러 세상 곳곳으로 퍼지는 울림을 만들지 못해도, 사람들을 조아리게 만드는 눈빛을 갖지 못해도, 그 잘난 싸움하나 못해도, 성찰 없이 덧붙여진 것들의 껍질을 벗는 일입니다. 걷는다는 일은 허명의 껍질을 벗어 속살을 드러내고, 그 속살이 풍상과 세월을 겪어 옹이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 옹이로 자작나무의 무늬를 만들어 길손의 풍경으로 사는 일입니다.

 

걷는다는 일은 허명의 버짐이 껍질처럼 일어나면 떼어내는 일입니다. 세상에 이름 석 자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지 못해도, 세상의 모순을 해결한 사상은 없어도, 아물고 있는 상처의 피딱지를 떼어 속에 든 허명을 게워내는 일입니다.

 

도보 여행은 자발적으로 가난함과 불편함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도보 여행은 혼자서 걷지만 함께 걸음걸이를 맞추는 일입니다. 사제동행 도보 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만들고 대자연의 순행과 이치를 깨우칩니다. 이백리 길을 함께 걸으면서 <동행=함께 살아감>의 의미를 배웁니다. 내 나라 내 땅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걸어봄으로써 스스로 해냈다는 긍지와 명예를 배웁니다. 교사와 학생이 걸으면서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는 슬기와 지혜를 배웁니다. 긍지, 명예, 자부심, 성취감, 그리고 체험을 파는 가게는 없습니다. 직접 스스로의 힘과 땀으로 걸어 성취를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당신과 나는 함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여 힘들면 쉬었다 가고, 넘어지면 일으켜 주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걸어갑니다.

 

 

 

9. 9월 : 책 읽고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기

 

책을 든 손이 가장 훌륭한 도서관입니다. 책속에는 천금의 황금이 있고, 인생의 지혜가 있으며 함께 걸어갈 친구가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모여 밤늦도록 토론하며 마음을 여는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함께 이야기해보면 자신의 좁은 시야를 발견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책의 맥락과 행간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토론하고 읽어보면 삶의 맥락과 감추어진 삶의 행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들고 있는 손이 가장 훌륭한 도서관입니다. 헌 책방에서 책을 골라 버스를 타고 가면서 책을 읽습니다. 가슴은 울렁거립니다. 책을 잡은 손등에 힘줄이 솟고 손끝은 떨립니다. 책을 잡으면 힘줄이 솟고 떨리는 손, 그 손이 가장 훌륭한 도서관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의 일이었습니다. 서울로 유학 와서 생활하다가 여름방학에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걸어서 십 여리를 가다보면 동리 밖 느티나무가 반겨주었습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 몇 개가 풍경처럼 정겹습니다. 고향 집에 들어서면서 그 동안 헤어졌던 마당을 밟아보고, 낯설게 달라붙은 처마의 거미줄과 인사합니다. 축축하게 젖은 청솔 타는 연기로 기침을 하며 한 동안의 이별을 달래 봅니다. 그날도 어머니는 저녁을 드시자마자 피곤에 지쳐 쓰러지셨습니다. 점잖게 ‘잠을 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고된 노동을 하신 하루였습니다. 참깨를 털면서 싸락싸락 싸락눈 같은 슬픔을 털어낸 하루였습니다. 참깨가 쏟아질라 곧추 세워 들었던 탓인지 어깨가 결렸습니다. 펴 놓은 멍석에 싸릿단을 흠씬 두들겨 패면 새 모이 같은 참깨가 쏟아졌습니다. 이놈은 맞을수록 제 것을 털어냈습니다. 문지방 넘나들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도 털고, 세상 풍문으로 들리던 죽음의 부고도 털어냈습니다. 그렇게 달라붙은 시름을 털어내느라 지친 하루였습니다. 그날 저녁 호박꽃처럼 노란 달이 떠올랐습니다. 창호지 문틈으로 달빛이 새어 들었고, 덩달아 문풍지도 바람에 울었습니다. 체로 받쳐 만든 창호지를 통해 달빛은 어스름하게 방안을 비추었습니다. 어머니는 모로 누워 고단한 하루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어머니 손을 잡았습니다. 아, 그때의 충격, 까칠한 가시가 손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갈래갈래 굽이친 어머니 손금의 계곡이며 산 말랭이 능선에 돋아난 가시나무를 보았습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싸락싸락 모이 같은 눈물을 뿌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그 거친 손의 손톱을 한 번도 깎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손톱을 깎는 모습을 본적도 없었으며 실제로 깎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밭일에 호미질에 닳았기 때문입니다. 손을 생각하면 그때의 일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

 

개학을 하고 나면 첫 시간 나는 아이들과 한 명 한명 악수를 합니다. 손잡고 악수하는 인사를 나눕니다. 찬 손이 있고, 따뜻한 손이 있으며, 굳은살이 박힌 손이 있습니다. 씨름을 하는 아이들과 피자배달하며 오토바이를 밤마다 타는 아이들의 손에는 굳은살이 박혀가고 있습니다. 약간의 옹이진 부분 몇 개와 단단함이 생활에 지쳐가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아픕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손을 잡던 내 경험을 전해주며 어머니 손을 잡아보고 그 느낌을 적어보며 아버지 발을 닦아드리는 숙제를 내줍니다. 내가 검사할 수 없는 숙제지만 잘 하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쑥스러워 어머니 손만 잡고 아버지 발은 닦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손을 잡아보며 어머니의 삶을 느끼고 아버지의 굳은 발을 통해 40년 이상 세상을 걸어온 그 삶을 느꼈으면 하는 바램에서 입니다.

 

요즘 내게는 손이 가장 훌륭한 도서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번 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교사 모임을 가지면서 책이 있어야 할 곳은 멋진 도서관의 책꽂이도 아니고 자기 집 서가의 맨 위 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 보다는 학급 교실이 학급 교실보다는 자기 집 서가가 자기 집 서가보다는 각자의 손이 가장 훌륭한 도서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방에서 책을 골라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잉크 냄새 맡으며 읽는 한 구절이 가슴에 남는 법입니다. 선생님한테 받은 책 선물을 넘겨보며 서문에 써 있던 한 구절 " 뜻을 세워라" 한 구절이 가슴 밭에 심어지는 씨앗입니다. 저녁 시간 애인을 기다리며 카페에 앉아 읽는 한편의 시가 영화가 되고 심금을 울리는 가락이 됩니다. 여행 가방에서 가지런히 접힌 페이지의 한 구절이 영혼을 울리는 한마디가 됩니다. 손이 우리의 가장 훌륭한 도서관입니다.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 도서관의 풍경이 곧 다가왔으면 합니다.

 

10. 10월 : 자연에서 지혜를 배우며 아이들 손잡고 퇴근하기

 

은행나무를 보면 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은행 알이 풍기는 냄새는 똥 장군을 지고 밭으로 향하던 아버지의 냄새가 나고, 군청잠바차림을 보면 논밭을 매던 아버지의 굽은 허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닮은 나무도 있습니다. 나를 닮은 나무 찾아 눈길을 줍니다. 교정에는 나무들이 많습니다. 벚나무, 소나무, 살구나무, 갈나무, 등나무, 은행나무, 등 사계절을 사는 나무들을 봅니다. 나무들을 보며 나이테를 생각합니다. 여름에 성장한 부분보다 겨울에 성장한 부분이 더욱 단단합니다. 나무 그림자 마당을 쓸어도 흔적하나 남지 않는 것을 봅니다.

 

대나무의 마디를 보며 삶의 계기를 만듭니다. 바람에 부러지지 않는 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겪는 삶의 위기는 기회이며, 삶을 받쳐주는 마디의 역할을 합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교사는 자신이 겪은 삶의 경험입니다. 그 경험을 통해 지혜를 배우고, 실패에 이르지 않는 교훈을 얻고 이정표를 발견합니다. 살아있는 삶의 경험을 통해 매력 있는 일을 발견하고 마음의 넓힙니다.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르치는 교사가 됩니다. 삶의 경험은 곡절과 사연이 담겨있고, 그 곡절과 사연은 삶의 마디가 되어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삶을 지탱합니다.

 

곧게 자란 나무는 가장 먼저 잘려나가 나무를 찍는 도끼자루가 되기 쉽습니다. 굽은 나무는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그 자리에서 그늘을 만들고 여럿이 함께 모여 숲을 만듭니다. 지친 달이 걸터앉아 쉬는 의자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나무는 허물을 벗으면서 버리는 법을 실천합니다. 여름의 반성 없는 성찰을 경계하고, 걱정과 근심, 욕심과 두려움을 버리고, 온전한 마음으로 온 정성과 열정으로 살아가는 법을 실천합니다. 세상은 걱정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욕심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두려움으로 주저앉는 것도 아닙니다. 정성과 관심으로 살아갑니다.

 

물의 지혜도 배웁니다. 위에서 아래로 흘러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지혜를 배웁니다. 물은 흐릅니다. 흘러 흘러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모입니다. 흐르다 바위를 만나면 에돌아 길을 만들고 틈을 보이며 세차게 부수어 뚫고 나갑니다. 거침없이 흘러 자기의 길을 만나 낮은 곳에서 생명을 살립니다. 물의 흐름을 방해할 것은 없습니다. 물의 길을 막을 장애물은 없습니다, 우직하게 꾸준하게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해 자신의 길을 갑니다. 도착하여 세상 모든 것들에게 도움을 줍니다. 최선의 삶은 물의 삶입니다. 上善若水(상선약수). 최선의 삶은 물의 흐름을 닮고, 물줄기를 담고, 물이 하는 일을 닮고, 물이 처한 위치를 닮아 묵묵히 살아갑니다.

 

10월은 자연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아이들 손잡고 퇴근하는 시간입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들어오고 나갔던 길을 따라 걸으면서 나도 자연이 되고 온기와 생명을 불어넣는 시간입니다. 손잡고 퇴근하는 길에는 고개숙인 아이가 있고, 낙엽처럼 방황하는 아이가 있고, 붉게 물든 가슴으로 사는 아이가 있습니다.

 

11. 11월 : 글을 쓰고 일기 쓰며 내 뒷모습 살펴보기

 

퇴근하다가 문자 메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14년 전 첫 담임을 하였고, 지금은 경기도 어느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졸업생의 소식이었습니다. “ 선생님!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과 함께 했던 모둠일기 쓰기를, 제가 교사가 되어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종례시간에 한 편씩 읽어주고 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좋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담임을 하면서 십 몇 년간 모둠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생활과 삶을 담은 일기를 쓰고, 조회 종례시간에 읽어주면서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과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만 만나는 교사는 불행하다는 생각에 행복한 일을 가지고 만나고 싶었습니다. 문제 상황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잔소리하고 훈계하고 화내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만남을 갖고자 시작한 일기쓰기였습니다. 하지만 일기 속에서 나는 아이들의 수많은 사연과 아픔과 슬픔을 만났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삶은 아프고 슬프며 아름답게 나타났습니다.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의 성장의 고통을 보았고,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나는 졸업생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교사의 소망은 이들의 행복한 삶이란다. 모임일기를 쓰는 것은 교사의 영광을 위한 것도 아니고 업적을 남기기 위한 것도 아니란다. 모둠 일기 쓰기는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해 삶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단다. 아이들은 늘 성장의 고통 속에서 자기 삶을 가꾼단다.”

 

모임일기 쓰기가 누군가에게 이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교사의 삶은 자신도 모르게 그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사의 뒷모습은 누군가에게 닮고 싶지 않은 반면교사가 되기도 하고, 정중한 가르침이 되기도 합니다. 교실을 걷는 발자국 소리조차 누군가의 삶에 정성이 되기도 하고, 방해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올해도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들과 삶을 나누는 모둠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 일기쓰기가 또 누군가에게 소리 소문 없이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올해 종례시간에 읽었던 고등학교 3학년의 일기 한 편에서도 나는 한 아이의 삶을 만났습니다. 일기를 통해 만난 삶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면서 나의 삶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11월의 황량한 풍경을 보며 글을 쓰고 생각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기름진 속을 게워내고 메마르고 건조한 들판을 가슴에 담을 시간입니다. 쓸쓸함은 쓸쓸하게 찾아들어 가슴을 살려냅니다. 쓸쓸한 들판에서 떨어진 벼이삭을 주을 시간입니다. 등 굽혀 낙수의 수고를 기울일 시간입니다. 벼랑 끝에 서있는 위태롭고 가파른 삶을 지켜야 할 시간입니다.

 

 

 

12. 12월 : 아이들과 눈밭에서 아침 조회하고 아이들에게 편지쓰기

 

사람들은 편지를 씁니다. 감옥에서 편지를 쓰기도 하고, 군대에서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군대나 감옥은 사고의 응축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그 때 그 상황'을 낱낱이 분석하여 자기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편지에는 오랜 묵상에서 나온 찬찬한 생각을 정리하는 법입니다. 그런 편지는 아주 조용한 투로 쓰였지만 읽을 때마다 소름돌기가 온 몸에 쫙 돋아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누에가 실을 뽑아 고치집을 지은 듯 찬찬하게 이어지는 문장들은 진한 감동을 줍니다.

 

감옥에서 쓰는 글의 형태는 대부분 편지의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기의 사상이나 경험, 그리고 새로 얻은 지식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담아 전합니다. 신영복 선생이 형수나 아버지, 어머니께 감옥에서 편지를 썼고, 야생초 편지의 작가도 풀 그림과 글을 편지 속에 담았습니다. 가족에게 전하는 편지가 안부편지일 수 있으나 그 속에 엄청난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는 안정성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가족끼리의 오손도손한 대화형식이지만 그 안에는 감옥에서 직접 경험한 내용을 울궈 낸 사고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편지는 대부분 자기의 내면에서 상대방과 주고 는 대화를 하면서 씁니다. 대화 상대자는 곧 편지를 받을 사람입니다. 내면의 대화 속에서 글을 쓰고 늘 살아 움직이는 마음을 봅니다.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어보면 자기 아내를 늘 생각하며 살아있어야 할 이유는 찾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겨울철 언 땅을 파고 그 파는 땅은 곧 자기가 묻힐 곳임을 알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는 늘 자기의 마음속에서 아내와 대화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내와 주고받는 대화를 상정하면서 곧 되돌아갈 곳이 있음을 자기에게 매일 확인시켜줍니다. 절망과 포기의 상태로 전락하지 않으려고 마음속에서 아내와 늘 대화하는 것입니다. 편지를 쓰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편지를 써야 하는 절실한 이유를 편지 쓰는 상대와의 가상적인 대화를 통해 찾는 것입니다. 절망과 포기에 빠지지 않도록 늘 살아가야 할 희망을 찾는 과정입니다. 편지를 쓰는 과정은 대화의 과정이고, 자신과 문답을 주고받는 일입니다. 편지를 쓰면서 질긴 인연의 끈을 잡고, 관계의 망을 튼튼하게 짜는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그물코를 이어주는 벼리의 역할을 합니다.

 

12월은 편지를 아이들과 함께 읽고 아이들과 눈밭으로 나가 조회하는 시간입니다. 눈밭에서 붉게 떠오르는 태양의 햇살을 가슴에 담는 시간입니다. 붉은 가슴에서 솟아나는 굳은 의지를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입니다. 내일은 다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고, 오늘 떠오른 태양의 온기는 오늘 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내 생애의 편지들

 

1. 자기 존재의 중요성을 알리며 썼던 생일편지

 

"우리들 각자는 그 누군가의 꿈과 희망이며, 우리는 그 누군가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존재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태어나 살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누군가의 인생이 행복해지고 아름다워지는 법입니다. 우리가 태어나 살고 있음으로 그 누군가는 삶의 이유를 얻고 있으며, 이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가 있으므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으며,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하는 법입니다. 늘 우리 자신을 존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2.부모와의 갈등관계로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

 

부모의 인생으로부터 우리의 인생이 이어집니다. 우리의 인생은 또 그 누군가의 인생으로 이어집니다. 부모님은 헤어질 수 없는 혈연과 필연의 관계입니다. 친구나 애인은 헤어질 수 있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헤어져도 남이 될 수 없는 사이입니다. 헤어질 수 없는 숙명의 관계라면 이해하는 관계로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부모님도 이 세상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이며, 시행착오와 실수를 저지르며, 단점과 오류투성이인 존재입니다. 부모님의 그런 불완전함은 자식인 나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지닌 장점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단점은 손가락질하기 쉽습니다. 다만 자식인 나만이 그 단점을 감싸 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슬픔과 아픔을 먼저 바라보는 일입니다. 부모님의 기쁨과 즐거움은 함께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과 슬픔은 자식인 나만이 바라볼 수 있으며 감싸 안을 수 있습니다.

 

3. 힘겨워 하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

 

고통 속에 성장이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으며, 비바람 맞지 않고 뿌리를 내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조개껍질의 진주 만들기, 갈매기의 높이 날아 멀리보기, 애벌레의 나비 탄생기 등을 통해 우리는 고통은 새로운 것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동굴속에서 그림자만을 바라보며 그 그림자를 사실의 물체로 바라보는 어리석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림자의 저 너머에 있는 나무를 못보고 있습니다. 가짜의 세계를 벗어던지는 의문과 의심을 찬양합니다. 동굴 밖으로 기어 나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동료들의 비난과 시기를 감내할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모든 과정은 참다운 이데아를 발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옹이진 나무마디는 상처가 난 곳이었습니다. 나무껍질이 벗겨지면 나무껍질은 모여들어 옹이를 만듭니다. 아픈 상처를 단단하게 만드는 자연의 작용입니다. 옹이진 곳 다시 가지가 뻗어 오르고 세상의 하늘을 향해 성장합니다. 아픔을 견디는 깊은 고독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 누구도 대신 아픔을 겪어줄 수 없고 오직 그 자신만이 그 상황을 돌파해야 되는 단 혼자만의 세상인 듯한 외로움도 있습니다. 사막을 걷는 낙타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적어도 섣불리 오아시스가 바로 곁에 있다는 착각도 필요 없습니다. 죽은 낙타의 썩은 시체와 뼈다귀를 보면서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외로움도 하나의 과정입니다. 저 너머 미래의 환상이 아닙니다. 저 아래 지나온 날들의 온한 추억에 빠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사막을 걸으며 건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