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步萬里-나의 삶

변산 겨울 바다

nongbu84 2014. 1. 22. 17:12

변산 겨울바다

            

 

                         1

대나무 잎사귀에 베인 바람이

가슴골을 훑고 가거든

내소사에 밤 마실 가자.

  

 

전나무 숲길을 걸으면

휘영청 달이 떠올라

길을 보듬어 안고

패인 가슴 가득 솔 향이 찬다

  

 

대웅전 문살마다

바늘 끝으로 조각한 연꽃이 피어나

모든 것은 다 살아난다.

  

 

처마 밑 녹슨 풍경(風磬)에도

상처가 아물어 새살이 돋는다.

              2

치마폭을 붙들고 징징대며

떨어지지 않는 생활이 있거든

모항에 아침 심부름 가자.

  

 

푸른 힘줄이 돋아난 손아귀로

변산의 끝자락을 붙들고

끝끝내 놓지 않는 모항은

  

 

성공한 것 없어도 실패하지도 않는

잘난 것 없어도 고개 숙이지도 않는

아픈 것 많아도 상처를 감싸는

소나무 몇 그루 길러내며

오랜 시간 가부좌를 틀고 있다.

  

 

모항 등줄기에 뿌리내린 감나무가

아이의 뜨신 오줌발에 소스라치는

겨울 아침이면

  

 

모항은 타작한 생활을 키질하여

쭉정이와 검불을 날리고

파랗고 꽉 찬 바다를 부른다.

  

 

감을 쪼아 먹던 까치가 찬 하늘로

날아오른다.

 

               3

눅눅하고 끕끕한 슬픔이

바람에도 마르지 않거든

채석강에 노을 마중 가자.

 

  

층층이 쌓인 주름을 떠받친

바다 밑 검붉은 바위가

가장 먼 서쪽까지 마중 나가

가장 먼저 파랑을 맞고

가장 늦게 돌아와

가장 오랫동안 멍든 곳

  

 

가장 오랜 세월 층층히 쌓여 둔 울음조차

그 오랜 시간의 침묵으로 쌓인 층층(層層)의 겹,

가장 오랜 세월 접고 접어 말린 풍경조차

그 오랜 공간의 화석으로 만난 층층의 겹,

  

 

그 곳,

인연의 이랑과 고랑이 만난

격랑의 무대에서

 

  

귓불이 시린 하늘과

짙은 눈썹이 슬픈 바다가 층층으로 만나

붉은 숨을 토해내고

파도를 싸락싸락 일어

소혓바닥처럼 붉은 노을을 걸러낸다.

 

 

저녁마다 채석강 노을은

바위의 허물을 벗기며

소나무의 가려운 등을 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