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脚陽春-나의 사랑

쉰, 사랑이 익어가다

nongbu84 2014. 10. 24. 09:10

쉰, 사랑이 익어가다

 

 

 

 

1. 안도현의 시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는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2. 서정주의 <입맞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자꾸 달아나고

울타리는 마구 자빠뜨려 놓고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 사랑의 석류꽃 낭기낭기

하늬바람이랑 별이 모두 우습네요

풋풋한 산노루떼 언덕마다 한 마리씩

개구리는 개구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굽은 강물은 서천으로 흘러 내려……

 

땅에 긴 긴 입맞춤은 오오 몸서리친

쑥잎을 지근지근 이빨이 허허옇게

짐승스런 웃음은 달더라 달더라

울음같이 달더라.

3. 그리운 악마...이수익

 

숨겨둔 정부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홀로 찾아 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창문窓門

그리고 우리 둘 사이

숨막히는 암호暗號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 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죄의 달디단

축배祝杯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의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 할 아픔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지라도,

 

숨겨둔 정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머언 기다림이 하루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 시키는 여자,그 악마 같은 여자.

   

4. 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하지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5. 강연호의 <적멸(寂滅)>

   

지친 불빛이

저녁을 끌고온다.

찬물에 말아넘긴 끼니처럼

채 읽지못한 생각들은 허기지다.

그대 이 다음에는 가볍게 만나야지.

  

한때는

수천번이었을 다짐이

문득,헐거워질때 홀로 켜지는 불빛

그어떤 그리움도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다.

 

그러므로

제몫의 세월을 건너가는

느려터진 발걸음을 재촉 하지말자.

저 불빛에 붐비는 하루살이들의 생애가

새삼스럽게 하루뿐이라 하더라도

이밤을 건너가면

  

 다시

그대 눈밑의 그늘이

바로 벼랑이라 하더라도

간절함을 포기하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는 노래나 시()같은것.

그 동안 베껴썼던 모든 문자들에게

나는 용서를 구해야한다.

   

혹은,

그대의 텅빈 부재를 채우던

비애(悲哀) 마저

사치스러워 더불어 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