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가을 저녁 - 추석을 위하여

nongbu84 2015. 10. 8. 14:50

가을 저녁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걸어서 십 여리를 가다보면 동리 밖 느티나무가 반겨주었습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 몇 개가 풍경처럼 정겹습니다. 고향 집 들어서서 그 동안 헤어졌던 마당을 밟아보고, 낯설게 달라붙은 처마의 거미줄과 인사합니다. 축축하게 젖은 청솔 타는 연기로 기침을 하며 한 동안의 이별을 달래 봅니다. 그날도 어머니는 저녁을 드시자마자 피곤에 지쳐 쓰러지셨습니다. 참깨를 털면서 싸락싸락 싸락눈 같은 슬픔을 털어낸 하루였습니다. 참깨가 쏟아질라 곧추 세워 들었던 탓인지 어깨에서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가 멍석에 싸릿단을 흠씬 두들겨 패면 새 모이 같은 눈물이 가득 쏟아졌습니다. 맞을수록 제 속 것을 털어냈습니다. 문지방 넘나들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도 털고, 세상 풍문으로 들리던 죽음의 부고도 털어냈습니다. 그날 저녁 호박꽃처럼 노란 달이 떠올랐습니다. 창호지 문틈으로 달빛이 새어 들었고, 덩달아 문풍지도 바람에 울었습니다. 체로 받쳐 만든 창호지를 통해 달빛은 어스름하게 방안을 비추었습니다. 갈래갈래 굽이친 어머니 손금의 계곡에서 울음소리가 들렸고 등 말랭이 능선에 돋아난 가시나무를 보았습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싸락싸락 모이 같은 눈물을 뿌렸습니다. 가을 저녁 하늘에선 보름달의 등뼈가 휘는 소리가 났습니다. 만삭의 배가 출혈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