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gbu84
2015. 11. 12. 09:03

사춘기 - 김중식|
마흔 살에 무너지고 있다 시대착오적으로 나는 졌다 시집값은 종잇값인데 집값은 시멘트값이 아니어서 거품이 꺼지길 기다린 오기 주식 한번 안 해본 게 자랑이었는데 -나는 졌다 변하지 않는 죄 마흔을 통과하는 형벌, 후회를 관통하는 형벌 로또 사서 몰래 번호를 맞춰보고 있다
마흔 살에 무너지고 있다 ‘무소유’에 감동하고 간디를 존경하는 전과 십수범의 웃음 앞에서 자기가 짓지 않은 죄에 대해 괴로워하는 사람은 아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해야 하나 유권자가 소수가 아니므로 내가 소수라고 말해야 하나, 같은 책을 읽고 정반대의 삶이 가능한 오래된 현실에 대해 -나는 졌다 변하지 않는 죄 세상이 변한 게 아니라 세상이 솔직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고 쓰고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해외 석박사 학위가 가짜인 국립대 무용원장 기사를 썼더니 월급 가압류에 민ㆍ형사 송사를 대법원과 고검까지 가고 그것도 모자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까지 가서도 그녀가 지고 내가 이겼는데 그녀는 건재하고 나는 지쳤다 사면 팔리는 게 변호사의 직업윤리인데 시인은 정의에 대해 절망하면서 재판비용 달라는 소송을 안 한다, 몇 푼 받겠다고 부자와 송사 하는 짓을 시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나는 졌다 재판비용 타내는 일을 우습게 알아서 신용카드 연체로 다른 카드도 못 쓰고 있다
마흔 살에 무너지고 있다 시대착오적으로 나는 졌다 아들아, 과외 정책사를 집필하면서 투항의 시를 쓰고 싶어졌단다 집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집이 없고 집 두 채 있는 사람은 집을 또 사는데 과외가 쭉 그래왔더구나 아무도 자녀를 득점기계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지만 남들이 하니까 모두 한다는구나 초등학교 4학년 영어 성적이 외고 입학 성적이고 부모의 경제력 순서라서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아이가 없고 외국에 있고 고등학교도 시험 쳐서 들어가야 나라가 잘 산다는 논리를 초등학생도 순응하는 시대 앞에서 나는 졌다 돈이 독식하는 이 따위 자본주의를 떠나는 꿈을 꾸고 있다 살 수 없는 게 있어야 살 수 있지 않겠냐 말릴 수는 없어도 거부할 위엄은 있어야지 않겠냐고 아빠는 생각하지만 아들아 훗날 내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나는 졌다 아들에게 영어와 피아노와 축구와 수영을 시키면서 거기 가야 친구랑 놀 수 있으니까, 내 자식 과외는 불가피하다고 믿고 있다
20년 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퇴행 내가 나를 믿지 못하므로 어떤 약속도 하지 않을 나의 미래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므로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를 꿈꾸었던 사춘기, 지내고 나면 누구나 통과한 전쟁, 욕망이 가자는 대로 저지르지도 못했던 비겁의 시절을 되풀이하는가 -나는 졌다 다 변했다 아들아, 묻어 가는 게 편할 뿐더러 옳기까지 하다고 내 입으로 말 못할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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