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삶의 옆과 뒤- 고향은 뒤따라 오고 있다

nongbu84 2015. 12. 10. 07:36

 

옆과 뒤 고향은 뒤 따라 오고 있다.

......박승균

 

천천히 걸어가면 나란하게 함께 걷고 있는 옆이 있다.

거기 둑방길에는, 개망초 꽃이 철지나 노랗게 피고, 갈참나무 마른 잎사귀에 싸락싸락 눈 내리고, 청둥오리 발자국 찍힌 언 호수가 침묵하고, 오줌 눈 자갈이 온 몸을 부르르 털고, 어둠내리는 눅눅한 저녁이 있다. 자작나무도 줄지어 허물을 벗고 있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빈 들판의 허수아비를 닮은 사내의 마른 얼굴이 보이고, 모닥불 주위로 몰려든 어둠이 있고, 찬 손을 모아 둔덕을 이루어 불을 쬐는 동무들의 손이 있다. 나란히 걷는 옆에 물안개의 등뼈가 허옇게 드러난다.

 

고향은 뒤따라오는 저녁이다.

 

걸어가다가 길을 멈추면 따라오는 뒤를 볼 수 있다.

거기 고향 마당에는, 늙은 쑥대공이 자라고, 가지가 잘려나간 감나무에 옹이가 맺고, 또아리 틀어 이고 가는 물 항아리가 넘실거리고, 장으로 팔려 가는 소가 앞굽을 땅에 박고 버티고, 부뚜막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의 수염도 자라고 있다. 마당 옆 늙고 오래된 갈참나무도 늘 그 자리 그 시간을 지키고 그렇게 서 있다.

뒤돌아 똑바로 바라보는 거기, 장수하늘소가 보름달로 날아가고, 꼬리에 불붙은 황소가 쟁기를 끌고, 소나무의 밑둥치가 햇살에 몸을 덥히고, 빈 들판이 사립문에 꽂힌 부고 같은 손을 흔들고 있다. 등 뒤로 따라오는 뒤에 어머니가 꼭 그렇게 서 있다.

 

고향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서서 뒤돌아 본 그곳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