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월훈리(月暈里) 솔숲

nongbu84 2016. 2. 25. 17:59

 월훈리(月暈里) 솔숲

 

1

 

서천 바닷가 월훈(月暈) 마을에는 푸른 솔숲이 많다. 소나무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마을 가까이 야트막한 둔덕 둔덕마다 촘촘하고 빼곡하게 솔방울을 매달고 서서 미역 줄기처럼 이어진 마을의 집들을 사방에서 바라보고 있다.

 

하루 이틀 새 생길 리 없다. 오랜 시간 바다 바람 맞으며 허물을 벗고 서로 보듬고 엉겨 붙었다. 잔가지 몇 개는 내어주더라도 등뼈는 꺾이지 않으며 바람의 결을 따라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은 것이, 꼭 그렇게 굽은 것이 언제나 눈을 뜨고 텅 빈 뱃속을 울려 소리 내는 외눈박이 목어(木魚)를 닮았다.

 

마을에 전해지기는,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 중이 솔숲에 들어 살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등에 소나무가 한 그루 나고 풍랑이 칠 때마다 흔들려 파도를 일으켰다. 마침 노승이 배를 타고 건너다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물고기에 박힌 나무를 뽑아 물고기는 살려주고 나무는 배속이 빈 물고기를 만들어 사찰 처마에 걸어 북을 쳤다. 그날 이후로 바닷가 솔숲에서 북소리가 자주 들렸다.

 

둥둥 소리내며 바람을 맨 몸으로 맞는 호기가 옹골차다. 함께 모여 어깨를 걸어 시위하듯 기세를 울리면 쑥대강처럼 헙수룩하게 흐트러진 바람의 머리털은 가르마를 탄 꼬마신랑이 되었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그런 밤일수록 정수리에 내리꽂는 별빛은 더욱 시렸다. 어깨위에 올라선 달도 발목을 잡힌 채 가던 길을 멈추고 솔숲에 걸터앉았다. 마을 골목을 돌아다니며 달빛은 풍어제(豊漁祭)를 올렸다. 집집마다 무쇠솥 그득 보름달이 차올랐다 솔숲은 쉬이 잠들지 못하고 두 손모아 절을 올렸다.


바람 잦아든 마을의 아침상에 굴비가 오르고 마을 사람들은 시퍼런 등줄기가 살아있는 바다로 배를 타고 떠났다

 

 2

 

바닷가 마을에서 소나무는 숲을 이루어 산다.

제 안의 꽉 찬 울음은 저희끼리 보듬으며

주름 잡힌 이마와 튀어나온 광대뼈와

맨 몸으로 서 있다.

 

솔숲에는 바다의 찬바람이 자주 찾아온다.

처음에는 길을 내주어 바람결 따라

가지를 뻗고 등 맞대 서지만

어깨 걸고 숲을 이루고 나면

머리풀고 달려드는 바람조차 비껴간다.

 

밤이면 달이 놀러와 교태를 부린다.

휘영청 떠올라 마을의 골목 골목을

싸돌아다니며 벽에 기대어 섰다가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지나가는 바람을

붙들어 괜히 드잡이를 하기도 한다.

 

새벽 솔숲에서 술 익는 냄새가 난다.

텁텁한 누룩 속에서 끓어 가라앉은

맑은 술 한 사발 걸러내는 아침이면,

 

바닷가 마을 솔숲은 부러지지 않도록

다시 어깨를 겯고 꼿꼿하게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