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그 봄날 우리는 강가에 앉아 있었다

nongbu84 2016. 4. 25. 13:52

그 봄날 우리는 강가에 앉아 있었다

 

 

햇살이 장대처럼 내리 꽂는 강가 그늘에 앉았거든 더 이상 이별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 땅에서 이별 없는 사랑은 허락되지 않았다 다만 사랑은 연두 잎으로 다시 태어났을 뿐이다

 

 

강가 그늘에서 슬픔의 술잔을 거두고 더 이상 가지에 목매달아 죽은 달빛을 그리워하지 마라

바로 이 순간 햇살에 등뼈 드러난 잎맥은 서로 촘촘하게 그물처럼 이어졌다 모든 것은 엮어졌다

장수 풍뎅이 한 마리 키우는 데 온 나뭇잎이 흔들렸듯,

그 애벌레 하나 슬프게 하는 데도 온 가지가 공모(共謀)하였다

 

 

그 봄날 우리는 강가에 앉아 있었다 강은 산 그림자를 안고 묵묵하게 흐를 뿐 말이 없다

둑방의 서어나무는 온 몸을 소란스럽게 흔들었다 햇살만이 잎 위에 들러붙어 빛났다

 

 

비켜라 거미줄에 걸려 말라 붙은 침묵의 시체여 저 햇살 막지 마라

온 마음 열어 바로 이 순간 햇살의 눈부신 찬란(燦爛)을 찬양하라

마을에서 아이가 아파 울고 있거든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죄에 대하여 무릎 꿇어 용서를 구하라

 

 

강가 그늘에서 우리 더 이상은 손조차 잡지 말고 헤어지자

우리 이제는 민들레 홀씨처럼 마을로 날아가기 위해 이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