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산 - 계룡산 은선폭포
nongbu84
2016. 5. 12. 12:23
산
삶이 바늘땀까지 속속 드러나 새삼 낯설어질 때가 있다
집으로 돌아와 처음 아버지로 사는 것이 참 아득하여
저녁 늦게까지 비 젖는 이삿짐처럼 문밖에서 서성이는 날,
삶이 너무 축축하고 무거워지거든 산으로 가보시게
더 이상 감나무에 목매 죽은 달빛을 이야기 하지 말고
두 손 들어 보름달을 받쳐 든 솔숲을 보란 말이네
삶이 햇살에 드러난 허수아비의 뼈처럼 앙상해 지는 날도
더 이상 손금이 정한 운명의 비정함에 눈물짓지 말고
폭포에서 낮별이 태어나는 순간의 찬란을 함께 하란 말이네
삶이 주름 펴진 바지처럼 헐렁해져도 산으로 가보시게
능선을 따라 걸으며 그 길이 울퉁불퉁 비바람 맞더라도
우람한 근육을 의뭉스럽게 뭉쳐 내는 등성이를 보란 말이네
삶이 바위틈에 허물을 걸쳐놓고 떠난 초록 뱀처럼 황급해져도
계곡 구석구석을 확실하게 만지며 서두르지 않고 거침도 없이
가장 낮은 사람의 마을로 흘러가는 물길을 따라 걸으란 말이네
살다 보면 삶이 가끔 친절한 적이 없이 까슬까슬 만져질 때도 있다
길을 잃고 막다른 골목 담벼락의 그림자로 꺾여 막막해져도,
산은 장례를 믿고 맡길 상주처럼 대숲 짚고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돌아오는 길조차 하악하악 숨 쉬며 이팝나무 꽃을 하얗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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