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붉게 익을 때
복숭아가 덜컥 붉게 익는 순간
처마 밑 제비집에 손을 밀어 넣어 만졌던 물컹 말랑하고 뜨신 제비 새끼의 맨 살, 그 순간 내 몸은 굳은 채 짚동가리 위에 주저앉았다. 참깨 쏟아지듯 별이 쏟아지며 나를 덮었다 그 날 내 마음에서 처음으로 둥둥 북소리가 났다
화흥리 학골 조맹씨네 자두나무에서 자두 두 개를 훔쳐 아랫말 큰 길로 달아나던 저녁, 걸음아 나 살려라 신발 들고 달려오던 그 순간 거칠게 헐떡이는 달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 날 내 발목의 복숭아 뼈가 뭉툭하게 튀어올랐다
동강 이편 길을 따라 걷다가 건너 편 빨간 라면 봉지 같은 지붕을 두른 계집애 집으로 줄을 잡고 끌던 배, 그 순간 묵직한 산이 강물에 탁발하러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 날 내 심장에서 폭포가 수직 낙하하며 계곡을 만들었다
어둠 내린 길 덜컥 네 손을 잡았을 때, 달라붙듯 움켜쥐던 네 손길을 다시 잡아채어, 단 한 번에 네 눈 속의 보름달을 본 그 때 그 순간, 나는 달고 시큼한 복숭아가 그렇게도 먹고 싶었다 그 날부터 내 운명의 손금으로 긴 강물이 흐르고 있다
누구에게나 담을 넘어 손을 뻗는 순간, 그 손을 꼭 잡아 준 순간이 있다. 다른 이름을 부르는 겁 없는 일탈의 순간, 다시 내 이름을 불러 응답하는 순간이 있다. 그건 하늘의 몫이라 인연이라 어찌할 수 없지만, 인간의 몫은 따로 있어,
사랑은 제 굳은 몸 맘이 부서지는 충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복숭아가 다른 먼 꽃잎에게 덜컥 맘주며, 붉은 피를 옮겨 오고, 핏기 돋은 눈 맞춤으로 제 몸을 물들여 사소하게 함부로 아프며, 붉게 멍들고 익어가는 일처럼,
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