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묵호 4 - 아버지

nongbu84 2017. 7. 17. 11:33

 

묵호 4 - 아버지

 

자욱하게 가라앉은 바다 안개 걷히면 항구의 목선은 하나씩 얼굴을 드러내고, 등 맞대고 잠들었던 산비탈 마을의 집들도 뼈만 남은 대문을 열며 빨갛도록 햇살을 쪼인다 잠결에 굴러 떨어질 뻔한 도라지꽃은 빈 집에서 파랗게 멍들었다

 

담 넘어 골목길로 울긋불긋한 능소화가 떨어지는 건 어판장에서 흥정이 한껏 붙어 시끄럽단 얘기다. 덩달아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아이들도 골목길을 따라 언덕에 오르느라 숨 가쁘다 빨간 우편함 같은 잇몸을 드러내며

 

유난히 잇몸이 붉은 덕중이는 오늘도 등대에 오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지 닷새 째, 무화과가 짓물러 자꾸 뒤란 장독대로 떨어졌지만 하나도 먹고 싶지 않았다

 

자욱하게 가라앉은 바다 안개 걷히면 파란 바다에 한 쪽 날개가 절은 나비 한 마리 날아와 도라지꽃에 앉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