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7 - 묵호에게 보내는 편지
묵호 7 – 묵호에게 보내는 편지
새로 지은 쌀밥에서 김이 오르듯 안개 걷힌 당신을 논골 골목길에서 바라보고 온 날 이후 저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산비탈에 아스라이 매달린 집들은 마치 성냥갑처럼 쌓여 그 집 안 하나하나엔 유황처럼 불붙기 쉬운 실존이 불안하게 들어 있을 것입니다. 자주 안개에 젖어 지붕이 무겁고 축축했지만 그래도 허리 굽은 노인이 손바닥만 한 텃밭에 심은 상추며 가지가 자라고 있습니다.
바다 바람은 골목의 시멘트벽 뾰족한 돌기에 제 얼굴을 들이받아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골목길은 상처 입은 바람이 넘어진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빈 집의 무너진 축대, 넘어진 담벼락 위에서 조는 길고양이, 창문까지 뒤덮은 담쟁이 넝쿨의 좌절.....모두 오랜 가난과 이별이 절인 자학의 역사일 것이지만 그래도 밧줄처럼 서로 엮은 골목골목은 산비탈의 집들을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인정도 있습니다.
그 길에서 마을의 아버지들은 지금도 바다로 나가고 어머니들은 어판장으로 내려가 함지박에 악다구니를 담아 흥정을 하고 있습니다. 담벼락의 갈라진 틈에서 개망초 꽃을 피우느라 봄부터 뛰어다닌 것은 골목골목을 이어 달려 등대로 오르는 아이들일 것입니다.
몸살을 앓고 내 마음에는 당신이 그린 벽화가 걸려 있습니다. 골목의 중간 쯤 내어 던져져 서 있는 당신의 뒷모습이 보이고,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가는 아이들이 발뒤꿈치가 보이고, 어판장 아래에는 펑퍼짐하게 좌판에 앉아 흥정하는 어머니의 옆모습만 보입니다. 아참, 언덕 위에는 키는 크지 않고 허리가 굵은 빨간 등대가 앉아 먼 바다를 보고 있습니다.
당신의 얼굴과 아이들의 얼굴과 어머니의 얼굴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당신에게 가는 길이 한참 남았나 봅니다. 당신을 보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골목길을 더 다녀야 하는 것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