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계수나무를 생각함

nongbu84 2017. 9. 21. 09:26

 

계수나무 이야기

- 황종욱 선생님을 생각하며

 

산책하다가 그 나무 숲에 가보았습니다

당신과 함께 자주 찾아오던 곳이지요

이곳에는 여전히 서늘한 바람은 불고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다녀 갑니다

함함하게 울긋불긋 물든 잎새를 주워

향기를 맡고 나눠주던 당신을 생각합니다

 

나무는 등 부비며 숲을 이루었습니다

그 숲 그늘에 손발 고운 아이들이 모이고

수많은 산새가 놀러와 쉬었다 날아갑니다

죽어서야 땅에 내려오는 새가 말이지요

상처 입은 까치는 왜 그리 자주 찾아오던지요

당신은 그런 숲 그늘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나무는 자신을 베는 톱날에 향을 묻혀 되돌려줍니다

잘려나가서야 제 나이를 드러낸 밑둥치에 앉으면

은은하게 달디 단 향기가 코끝에 묻어 납니다

제 아무리 날카로운 톱날이라도 별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미운 사람에게도 향을 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환하게 웃던 당신은 없습니다

떠난다는 말도 없이 아주 홀연히 떠났지요

그 봄날 강변에서 손조차 잡지 말고 헤어지자던 다짐이

어이. 이리. 일찍. .. 이별이

될 줄이야 어.. .....

 

더 이상 이 나무숲엔 함부로 오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계실 곳 하나는 남겨두어야겠기에

  

당신은 이곳 나무숲의 그늘과 향기로

나는 세상 좁은 골목의 긴 그림자로

함부로 애틋하게 흔들리다가

여차저차하여 마음 고단하면

그 때 당신을 찾아오겠습니다

 

항상 당신은 거기 면면(綿綿)하게 서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