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아주 오래된 술집
nongbu84
2017. 9. 22. 13:28
아주 오래된 술집
가을이 서성이다가 늙은 주막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벽에 걸린 시계가 계속 하품하는 소리를 내고 손님 하나가 대낮부터 엄지손가락으로 막걸리를 휘이 저어 술잔을 연신 들이켰다 외롭게도 혼자였다 제 손등 붉어지도록 긁던 담쟁이가 창문에서 고개를 빼들고 기웃거리다가 온 몸 불덩이가 되더니 빨갛게 물들었다
지난여름, 위대하고 뜨거웠다 삶이 죽음을 데리고 세상을 나다녔지만 길은 무심하게 제 속을 다 열어주었다 매미가 흙투성이 허물을 벗고 빠져나오는 동안 딱따구리가 목을 뒤로 제꼈다가 나무를 다시 쪼는 부리질 소리가 유난히 컸다 애벌레 몇 마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늘 쫑이 스스로를 밀어 올리며 솟아오르는 사이 바람은 낮잠을 자다가 고요 속으로 사라졌다 마늘처럼 맵고 아린 새끼들 키우는 어머니가 저녁 밥상을 차려놓았지만 지게에 쌓인 풀들이 뜨겁게 등짝을 덥히며 평생 깔짐을 지던 아버지의 생애가 누렇게 떠서 지게에 실려 갔다 살구는 담 넘어 옆집 시악시가 오줌 누는 엉덩이를 몰래 본 순간부터 시큼한 침을 안으로만 삼키며 짓물러갔다
가을은 늙은 주막이다 한창 가려운 여름이 허물을 벗어 던지고 마른 몸으로 찾는 아주 오래된 술집이다 그곳에서 모든 걸 받아들여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 하나가 있으니 그건 뜨거운 삶의 시간 동안 단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래된 주막에 앉아 늙어가며 다시 사랑하는 이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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