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꽃
파꽃 – 신월동 누나 이야기
1
누님이 함께 파를 다듬다가 내 과거를 아내한테 다 했다오
아니 누님, 그걸 다 얘기하면 어쩌요
그 사람은 모든 얘기 다 하구 살아도 연애 얘기만큼은 안 되는 거 알잖소
그해 겨울 아내는 파를 사다가 화분에 심어놓고 싹둑싹둑 잘라 찌개에 넣어 끓였다
시원하였지만 매콤한 맛이 더 강했고 겨울이었음에도 파순은 계속 올라와 몇 번을 더 잘라내야만 했다
2
누님도 알잖소, 엄니는 아부지가 아카시아 숲속으로 사라지는 걸 산 말랭이서 보고도
모른 채 새참을 이고 가서 멸치 국수 내놓고 막걸리 사발 잔을 따라 주었다잖소
강둑에 앉아 고시레 고시레 밥 한 술 던지는 그 팔이 을매나 아팠겄소
그해 봄 어머니는 호롱불 같은 파꽃을 피우려 팔이 퉁퉁 붓도록 호미로 땅을 팠고
노랑나비는 서둘러 텃밭을 날아다니다가 날개에 파란 외눈박이 무늬를 새겼다
3
햇살 고운 이 아침, 나는 혼자 쪼그리고 앉아 파밭을 본다
마냥 서운한 담장 밑에서 파꽃이 가득 넘치도록 환하게 피었다
퉁퉁 부은 종아리로 서서 금싸라기 별들을 머리에 한 뭉치씩 이고
그리운 무엇이 솟아오르는지 그 끝이 바늘처럼 뾰족하다
아주 마냥 서러운 땅에서 부러진 팔로도 넘어졌던
그 곳을 짚고 다시 일어서서 이슬방울처럼 빛나고 있다
사랑이란 이런 건가
모가지를 잘라내도 그리운 무엇이 다시 솟아오르고
서러운 상처를 다독여 얼룩진 무늬를 만들고
끝내 옹이 같은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파 꽃의 허점(논리적 오류) 같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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