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gbu84 2017. 10. 18. 15:38


 

연꽃

 

내 마음 안으로 더 이상 스며들려 하지 마라

나는 늪에서 태어나 아물지 않은 기억이 있다

찬 방구들 보리까락 묻은 핏덩이로 자라

한 쪽 가슴이 시린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늘도 바람이 불고 비가 흩뿌려 

빗방울이 가슴 한가운데로 모여 들었지만

스미지 못해 온 하루 저 혼자 팽팽하다 돌아갔다

 

나는 고요의 눈빛을 사랑하는 죄밖에 없다

언덕 위 지붕 파란 학교에서 풍금 소리 들려도

젖은 이삿짐 리어카의 바큇살이 은빛으로 빛나도

더 이상은 한 방울의 눈물도 허락하지 않는 그 고요를,

 

허나 한낮 소란한 앞뜰의 찬란보다

뒤란 응달의 고요를 더 사랑한 네가

발목젖어 돌아오는 저녁이면 나는 흔들렸다

지붕의 고양이도 숨죽여 초승달을 할퀴었다

네가 스며들어 너무 꽉 찬 가슴 나머지 한 쪽마저

꽃대 솟아오르고 꽃 몽오리 환하게 터져왔으니

 

내게 스며드는 일을 더 이상은 하지 마라

스며든다는 건 내 삶과 네 죽음을 서서히 뒤집어

바꾸는 일처럼 아득하게 애틋한 일이라서

이 저녁 꽃잎조차 단호하게 튕겨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