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고구마꽃
nongbu84
2017. 10. 20. 10:53
고구마꽃
감나무 그늘 함지박에 갓난아이 뉘여 놓고 긴 밭의 이랑을 타고 앉아 밭을 매던 자리
두꺼비처럼 아이가 울면 엉덩이 깔고 앉아 오디처럼 까만 젖꼭지 물리던 그 자리에서
똬리를 틀고 고개를 꼿꼿이 세워 밭을 둘러보는 유혈목이 같은,
밭 갈던 남자에게 손목 잡혀 아카시아 숲속에서 새참 같은 연분을 나눈 후
분꽃이 피면 물동이 이고 부엌으로 달려가 무쇠 솥에 저녁밥을 앉히던 여자
모시적삼에 황톳물 마를 날 없이 여름 나고 나면
두건 둘둘 말아 똬리 틀어 항아리 이고 시오리 안팎의 논둑을 다 걷던 여자
참깨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아들 녀석 다녀가면 가슴 방망이질 멈추지 못해
또 동구 밖 미루나무 걸린 구름만 뭉게뭉게 탓하던 여자
손톱 발톱 깎는 걸 나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오늘 울긋불긋 몸 달아오른 꽃뱀처럼 밭둑 아버지 무덤으로 향한 고개가
아슬하게 처연(凄然)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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