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
손길
늙은 아버지의 손은 심장에 박히는 가시다 손등은 주름지고 손가락 마디마디 굳은 살 투성이다 그 손으로 잡는 낫은 손때가 묻어 낫자루는 투박하지만 날끝은 빛난다 늙은 아버지는 상처뿐인 손으로 벼를 베어 가족이 먹을 양식을 준비한다
아버지의 손을 생각하면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우주보다 내가 먼저 아프다
늙은 친구의 손은 서로의 마음을 낚는 어부의 노래이다 손바닥에 새겨진 지문에는 운명 같은 만남이 있고 강물 같은 곡조가 흐른다 검고 투박한 그 손을 잡으면 마음이 흘러드는 다리가 생겨 애잔하고 따뜻하다 늙은 친구가 마른 손으로 마른 손을 잡아 함께 걸어갈 용기를 북돋운다
친구의 손을 생각하면 배를 문지르던 조약돌처럼 남보다 내가 먼저 따뜻하다
늙은 신부의 손은 영혼을 울리는 종소리다 손등의 검은 반점이 도드라져 원수를 죽일 수도 있지만 상처를 쓰다듬는다 그 두 손을 모아 무릎 꿇으면 그 안에 용서와 사랑으로 가는 섶다리가 있다 늙은 신부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하며 하늘에 닿는 종소리처럼 사랑을 구한다
늙은 신부의 손을 생각하면 미움조차 사그라들어 원수보다 내가 먼저 용서를 구한다
눈이 가야할 길이 있고 말이 가야할 길이 있다면 손도 가야할 길이 있다 서로 눈길이 열리고 손길이 트이고 말길이 통하면 마음의 길이 열리고 그 길로 푸른 강물이 흐르고 세월이 넘나들고 삶이 다녀간다 아버지는 논밭으로 향하는 손길이 있고 친구는 마음으로 향하는 손길이 있고 늙은 신부는 기도하고 용서하는 영혼으로 향하는 손길을 지닌다
나는 아버지이고 친구이고 늙은 신부는 아니어도 오늘도 내 손으로 일하고 손 맞잡으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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