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gbu84 2017. 12. 21. 10:41

 

생강

 

좋은 비가 때를 맞추어 밭을 촉촉하게 적시면

듬성듬성 심은 생강은 촘촘하게 자라기에 좋았다

 

마음은 제 몸 어디로든 삐져나오는 것이어서

눈물은 슬픔이 삐져나온 것임을 알지만

자꾸 제 안으로 잡아끄는 힘줄도 있어

서러움을 터뜨리지 못하고 오므린

생강은 울퉁불퉁하게 주먹을 쥐고

 

숨 쉬는 적요의 땅, 그 속에서 생손 앓으며

잎처럼 무성해지는 욕심 잘라내고

제 속 매콤하고 톡 쏘며 향긋한 향을 자아내는 일은

노란 주전자의 운명처럼 슬픈 이들의 몫이어서


사기 등잔의 심지처럼 제 몸 제 마음 스스로 덥혀

웅크린 용의 머리에 역린 같은 새싹 하나 틔우려면

땅속 어둠의 역사도 덖어야 했다

 

사월 아침 내리는 봄비를 넙죽넙죽 받아먹고

흥건하게 젖은 밭에서 슬픈 것 따라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꽉 채운 생강처럼

나의 사랑은 아픈 손가락을 꼭 움켜쥐고 굳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