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느티나무
nongbu84
2018. 1. 8. 12:53
느티나무
갓골 마을 들머리에 느티나무 한 그루 서 있네
집 한 채 없던 양지 바른 언덕에 뿌리내리고
끝자락을 붙든 삶들이 하나 둘 모여 들어
논밭을 일구고 마을을 이룰 때 가지를 뻗었지
지금은 사람들이 모여 생의 통증을 다스리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두부 같은 그늘 만들었지
젖은 마음 빨랫줄에 널은 집집의 마당으로
길이 이어질 땐 칡뿌리 같은 허벅지를
자랑하고 수북한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풋내 나는 몸짓으로 사람들을 서슴없이 유혹했지
그러나 빈 들판만 바라볼 때가 많았지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찬바람 파고들 때
웃자란 욕심은 가차 없이 잘려나가
살점 뜯기며 한없이 움츠려들었지
오롯한 총기만이 새순 틔울 수 있음을
알게 된 건 겨울밤이었지
배가 터질 정도로 아가리 벌려 달빛을
잡아먹더니 생가지가 부러지더라구
그렇게 될 줄 어찌 알았겠어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부러진 가지 끝 삼삼하게 얼더니
속 깊은 곳에서 무엇이 올라와
온 몸을 뜨끈뜨끈하게 만드는 거야
아픈 상처 그냥 견뎌 내더라구
높게 솟구쳐 끝으로만 뻗던 생기가
꺾이자 온 몸은 따뜻해지고
봄이 되면 새순이 돋아났던 거지
아름다운 건 상처가 만들어낸 무늬라더니
겨울에도 그림자로 눈밭에 박혀
여름 그늘의 넓이를 잴 수 있다는 건
마을 들머리에 서서
혼자 늙어가는 행운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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