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길고양이
nongbu84
2018. 2. 9. 08:38
길고양이
술 취한 내 그림자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처마 밑에 걸어놓고 계단을 올랐지요
어김없이 현관문 앞에 리본으로 묶은 상실이 배달되었네요
거리 불빛이 넥타이 풀고 검은 쇼파에 앉아 있습니다
습관처럼 냉장고를 열었지요
얼음 칸에 얼려 놓은 교회 종소리가 듣고 싶었지만
그냥 혼자 유통기한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만 따서 먹었습니다
오늘도 거리에서 가면을 쓴 익명들을 스치고 지나 왔지요
어깨와 어깨가 스치는 거리는 눈금자의 한 칸보다도 가까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수신 불명의 전화만 연신하다가
공중전화 부스에 수화기를 목매달아 놓고 나왔지요
수천의 전파를 안테나로 보냈지만 통신 불능이었습니다
아직 그 수신음 살아 있을까요
커피포트에서 물이 끓는 동안 물때가 불어 올랐고
오래 외출을 하지 않은 곰 인형은 살만 올랐네요
퉁퉁했던 비누는 하루 다르게 바짝 말라 갑니다
젖은 수건은 베란다 건조대에서 눈물 흘리고 있었지요
수건이 아픈가 봅니다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토하다가 거울을 보았습니다
그 속에 막다른 골목을 닮은 얼굴로
길고양이 한 마리 웅크리고 있었지요
유통기한 지난 정어리 통조림을 노려보는데
닫힌 캔 뚜껑만 싹싹 핥아야 하는 비애가 담겼지요
피아노 건반처럼 검고 흰 얼룩이 연주한 그 눈빛,
참 집요하고 간절했지요
수신 불능의 안테나에서 죽은 뼈를 추리는 옥탑의 표정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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