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맨홀뚜껑

nongbu84 2018. 3. 2. 22:43

 

맨홀 뚜껑

 

넥타이 구겨진 사내가 쪼그려 앉아 전봇대에 기대고 있었다 발 앞에 쌓인 담배공초는 병색이 짙었고 입에 문 담뱃불은 성난 눈빛으로 골목을 노려보았다 달은 녹슨 압정처럼 박힌 밤, 빈 소주병의 어깨로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그는 차고 육중한 어둠에 눌려 보도에서 얼어붙고 있었다

 

눈발이 저 혼자 사무쳐 내리는 퇴근 길, 전봇대에선 구인 광고지가 바람에 흩날렸다 연민은 참 저렴한 가격으로 폭락하였으므로 지하철 선반에 두고 내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이 녹자 사내의 등짝부터 드러났다 척추마디가 나란하게 줄지었으나 몸은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언 땅에 박힌 맨홀 뚜껑, 웅크린 그의 등 아래로 어둠을 걷는 낙타의 방울소리 들리고 그의 등뼈엔 등록 상표만 찍혀 있었다 한 때 지상의 푸른 이마였던 낙타 한 마리 그렇게 무거운 짐을 내리고 유골로 사라졌다

 

눈이 녹으면 낙게 길게 엎드린 보도에선 가장 먼저 맨홀 뚜껑이 드러났다 


맨홀 뚜껑

 

넥타이 구겨진 사내가 쪼그려 앉아 전봇대에 기대고 있었다 발 앞에 쌓인 담배공초는 병색이 짙었고 입에 문 담뱃불은 성난 눈빛으로 골목을 노려보았다 빈 소주병의 어깨로 눈이 수북하게 쌓이고 그는 차고 육중한 어둠에 눌려 보도에서 얼어붙고 있었다 달이 녹슨 압정처럼 밤하늘에 박혀 떨고 있었다

 

눈발이 저 혼자 사무쳐 내리는 퇴근 길, 전봇대에선 구인 광고지가 바람에 흩날렸다 연민은 참 저렴한 가격이었으므로 지하철 선반에 두고 내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이 녹자 사내의 등짝부터 드러났다 척추마디는 나란하게 줄지었으나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언 땅에 박힌 맨홀 뚜껑, 웅크린 그 안에선 사막을 걷는 낙타의 방울소리 들리고 그의 등엔 등록 상표가 찍혀 있었다 지상과 지하를 넘나들던 낙타 한 마리 무거운 짐을 내리고 그렇게 문을 잠그고 사라졌다

 

보도에선 눈이 녹으면 가장 먼저 맨홀 뚜껑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