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찔레꽃
nongbu84
2018. 7. 4. 16:36
찔레꽃
너와 함께 걸어 내려오는 길, 톱니 같은 턱잎으로 받쳐 든 찔레꽃이 사무치도록 하얗다
하얀 그것이 어린애의 첫니 같다가도 창백한 꽃잎이 사뭇 흔들리면 젖꼭지 물린 듯 내 몸 진저리치는데, 네 손을 잡지도 못하고 나는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걸을 뿐이었다
스무 몇 해 전 너는 봄의 찔레꽃처럼 빛나는 왕관을 쓰고 결혼식을 하였다 그날 나는 찔레 가시덤불에 숨어들어 너와 쪼개어 나눈 조약돌로 등줄기에 찔레꽃 문양을 새기고 있었는데,
그날 낮달은 푸른 하늘에서 새우처럼 등을 말아 해쓱하게 굽어갔다
세월도 불경(佛經)처럼 늙어갔다 처마 끝 달랑거리는 풍경 같은 날들이 지나갔다 무릇 사는 게 혼자 밥 먹다가 문득 거리 한 가운데로 내어 던져진 어느 외로운 저녁 같아서 혼자 별을 보며 바람을 맞는 날이 많아졌다
너를 만나 함께 걷는 오늘 같은 저녁은 예리하게 떨려 송곳니 환하게 드러난 찔레꽃이 좋았지만 너를 보내고 뱀의 혀끝처럼 갈라진 길에 서면,
저만치 가시덤불 속 꽃 문양의 허물을 가시에 걸어두고 흰 뱀은 혼자 울었다 흰 뱀이 제 뺨의 눈물을 긴 혀로 핥는 저녁만큼 서늘한 슬픔이 또 있을까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