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 팔찌 이야기
느티나무 - 팔찌 이야기
장모님 생신에 처가에 다녀왔습니다 고향 시골집이 그렇듯 새끼들 자라 날아간 제비집처럼 헌 신발이 문 입구에 층층이 쌓여있고 그 신발 더미를 비집고 강아지 댓 마리 꼼지락거렸습니다
내가 뭔 죄를 죄었길래 큰 놈은 사고로 죽고 작은 놈은 몸져 누웠당가 난 말여 농사 진 죄 밖에 없어
아흔을 앞둔 장인은 목소리를 높이며 울먹하였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은지 오래 된지라 소리 지르듯 말하였습니다
또 저런다 그런다고 죽은 놈이 살아 오것어요 아픈 놈이 일어나 것어요
작은 처남 병수발에 더덕 밭이며 채소밭을 두고 병원에서 먹고 자는 장모는 모처럼 집에 와 타박합니다
죽은 사람은 죽었더라도 산 사람은 살아 견딜 수 없는 걸 견뎌야 하는 게 사는 거라지만 장모는 탯줄처럼 질긴 인연의 끈을 꽉 잡고 놓지 않습니다
근데 사우, 아덜은 잘 크고? 요즘 세상 어지럽던디 선생 노릇 할 만한가? 나좀 봐 이젠 정신두 없어 사우 왔는디 술 한 잔 줘야지...
안부와 안녕을 물어보다 밤이 깊었습니다 장모가 삼십 수년전에 집 밖 어귀에 심은 느티나무가 가로등 불빛에 잎잎마다 빛나고 잎잎 사이로 배어든 밤이슬이 축축하게 스며듭니다
아니, 근데 사위, 그건 뭔가 팔목에 빛나는 그건 뭔가 병원에 있는 사람들 죄다 하나씩 찼더만 딸내미가 사주었다고 하고 며느리가 사주었다고 하더만....내 왼 팔목엔 게르마늄 팔찌가 빛나고... 나의 누이들이 사준 하나뿐인 선물이었습니다 장모님 이거 하세요, 팔찌를 벗어 장모님께 드렸습니다
밤바람을 쐬러 나와 느티나무 아래 앉았습니다 장모님 마음 미리 알고 하나 사드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팔찌 자국 선연한 왼 팔목이 저려왔습니다
지나는 사람 미리 생각해 그늘 만들려고 부지런히 잎잎을 총총 키우는 느티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가지마다 별송이 송이 가득 매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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