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집
순두부집
장마 지나 내리쬐는 땡볕 아래
비닐 막을 말아 묶어놓은 순두부집
청기와를 해 입은 지붕이 오래 묵은 봉분封墳 같다
갑자기 장끼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오를 듯하다
기왓장이 떨어져 나간 지붕 한 귀퉁이에선
푸른 이끼가 축축한 몸을 바짝 말렸다
대문 기둥에 등을 기댄 덩굴은
흘러내린 등나무의 바지춤을 치켜세우고
덥수룩한 갈나무의 머리숱을 짱짱하게 당긴다
아무리 애써도 옹쳐 매어 뗄 수 없는 生의 갈등
한 쪽만 열린 파란 대문은
닫힌 다른 쪽 문을 뒷짐 진 채 바라만 보고 있다
주인 할머니, 가마솥뚜껑 뒤집어
들기름 칠하고, 두부를 지지는 동안
사납던 참나무 장작불은 잠잠하다
한 줌의 재속에 아직
활활 타오르던 生결기가 남아있다
전내 가득한 주막의 취기 속에서
벽에 얼굴만 내민 선풍기가
훅, 훅, 뜨거운 바람만 불어댄다
순두부의 침묵 앞에 모두들 고개 숙인 채
말없이 물렁해져간다 아주 연하게,
술잔이 몇 순배巡杯 돌아
왁자지껄 떠드는 동안
햇볕 사무치는 마당 멍석에선
빨간 고추가 제 매운 사연을 말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싸락싸락,
고추씨 같은 울음 터뜨릴 듯하다
뜨겁게 달구어진 8월의 오후, 순두부집
불꽃 탁탁, 튀는 화택火宅의 장작처럼
모두들 불경佛經처럼 말라 갔다
하늘과 땅, 그 사이 집, 에서 타고 있는
생의 마지막 火氣화기
걷어 올린 비닐막이 이마 눈썹에 와 닿고
눈길에 숲길의 거미줄 같은 게 엉켜 붙는다
손 차양막을 만들어 이마에 대니
먼 밭 가득 핀 해바라기가 까치발로 서 있다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달아오른 사랑
얼마나 뜨거운지 얼굴까지 태웠다 새까맣게,
미루나무에 허물 벗어놓은 매미도
제 뱃살을 죄었다 늦추었다 허리띠를 졸라맨다
쩌렁쩌렁, 여름의 마지막 비명,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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