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길고양이에게 길을 묻다

nongbu84 2018. 11. 2. 15:57

 

길고양이에게 길을 묻다 : 그게 사는 거예요

 

길고양이 한 마리 지하실 창고에서 뛰어나와 벽돌 담장으로 뛰어오르더니 요긴하고 폼 나는 동작을 멈추었고, 값싸고 볼품없이 지친 그림자를 끌고 퇴근하던 나는 가로등 아래에 쪼그려 앉았다 나와 너 사이는 자벌레가 반나절 기어가야 할 정도로 멀었지만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다 서로를 쳐다보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의식했다 서로 차마 꺼내지 못하는 말이 있다

 

당신을 미워하는 거 아시죠?

 

매일 저녁 벌어지는 외나무다리의 결투, 누가 먼저 값나가고 위엄 있게 고개를 들어 상대의 심장에 방아쇠를 당기느냐가 문제다 저렴하게 말을 하고 발품을 팔고 돌아오는 나의 구두 뒤축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쓰레기 더미를 뒤졌을 너의 뒷발바닥이 초승달처럼 깎여(닳아) 기울어져 있다 윤기 나는 내 구두코와 비린내 가시지 않은 너의 앞발은 아직 빛났지만 기문氣門을 모두 막고 마른 매미처럼 박제되는 게 서럽다 네 속에 내가 있어서 너와 나 둘 다 똑같이 사무치도록 미운 거다 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 그게 사는 거예요?

 

점심 때 사무실에 들러 팔았던 마지막 웃음이 울음으로 반품되었다 군 생활의 부동자세를 하면서도 보름달은 떠올랐다 머리박고 쳐다보던 밤하늘의 별빛은 차라리 현기증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철조망에 갇힌 초소지붕에 함박눈이 듬뿍 쌓였어도 망개 열매 빨갛게 빛났다 허나 지금의 나는 본문을 잃어버리고 별책 부록 같은 하루를 사는 게 버거워 쪼그려 앉아 고개 숙이고 너의 눈빛은 오래전 잃어버린 사냥의 시대와 열대 우림의 강줄기와 일출과 일몰의 장엄함을 동경하기 때문에 담장 위에 뛰어 올라 굳어가는 것이리라 너와 내가 자신에게 되묻고 있었다


온 맘으로 맞이하고 온 몸으로 껴안아 본 적 있나요?

 

나는 일어서려 종아리에 힘주고 너는 돋움 직전의 엉덩이를 들었다 누군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빛이 마주쳤다 팽창하는 동공 속으로 어둠이 깊게 빨려들었다 서로 돌아섰다 가난한 게 가난해도 사랑한 게 사랑해서 그리운 게 잘못이었다 나는 끌고 온 그림자를 처마 밑 녹슨 못에 걸어두고 계단을 오르고 너는 지하 창고 계단을 내려갔다 네가 돌아선 계단에서 비린 생선 냄새가 풍겨왔다 통조림 캔 뚜껑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연애는 이제 유통기한이 지났고 너의 연애는 이제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속에 남은 생선의 등뼈 한 조각을 물고 있다 


퇴근 길, 집의 비밀 번호를 잊어버린 나는 절단기로 자물쇠자체를 끊어버리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첨탑 꼭대기에서 울러 퍼지는 교회 종소리가 듣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