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길고양이에게 길을 묻다 1

nongbu84 2018. 11. 5. 14:25

 

길고양이에게 길을 묻다

 

길고양이 한 마리 지하실 창고에서 뛰어나와 벽돌 담장으로 뛰어오르더니 요긴하고 폼 나는 동작을 멈추었고, 값싸고 볼품없이 지친 그림자를 끌고 퇴근하던 나는 가로등 아래에 쪼그려 앉았다 나와 너 사이 자벌레가 반나절은 기어가야 할 정도로 멀었지만 네 눈빛은 나를 팽팽하게 당겼다 매일 저녁 벌어지는 막다른 외길의 결투,

 

당신을 미워하는 거 아시죠?

 

너는 값나가고 위엄 있게 고개 들어 내 심장에 네 혀의 방아쇠를 주저하지 않고 당긴다 저렴하게 말을 하며 발품을 팔고 돌아오는 내 구두 뒤축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쓰레기 더미를 뒤졌을 너의 뒷발바닥이 초승달처럼 깎여 기울었지만, 윤기 나는 내 구두코와 비린내 가시지 않은 너의 앞발은 아직 빛났지만, 너는 인정사정없다 나는 서서히 너의 사냥감이 되어 가고 있다

 

당신, 갈 곳이 없는 거죠?

 

점심 때 사무실에서 마지막 웃음을 팔았지만 물렁한 소포 같은 눈물로 반품되었다 아직 나의 눈빛은 시큼한 자두를 먹는 별책 부록 같은 저녁을 그리워하지만, 너의 눈빛은 오래전 잃어버린 사냥의 시대와 열대 우림의 일몰을 동경하지만, 배달된 해고 통지서, 물컹하게 젖은 가슴 안주머니를 말리느라 차마 네게 말할 수가 없다

 

당신, 누구인가요?

 

나는 일어서려 종아리에 힘주고 너는 돋움 직전의 엉덩이를 들었다 마주친 눈빛, 팽창하는 동공 속으로 어둠이 빨려들었다 돌아섰다 나는 끌고 온 그림자를 처마 밑 녹슨 못에 걸어두고 집 계단을 오르고 너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계단에서 통조림 캔 뚜껑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린 생선 냄새가 훅 풍겨왔다

 

오늘, 나는 KO패다

 

나의 하루는 유통기한을 넘긴 가로등의 그림자로 남고, 너의 하루는 이제 유통기한이 지난 생선 통조림 뚜껑을 핥는 혓바닥 소리로 남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현관 벽에 붙은 거울 속에서 생선뼈 조각을 물고 고양이 한 마리 튀어 나왔다 성당 첨탑 꼭대기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처럼 서글픈 눈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