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버팀의 미학 - 느티나무

nongbu84 2018. 11. 9. 11:02

 

버팀의 미학 - 느티나무

 

 

나이가 오백년은 족히 넘고도 넘어

자벌레가 한 삼십년은 기어올라야

꼭대기 우듬지를 가늠할 수 있던 느티나무

그 옛날 동네 사람들이 나무 그늘 아래 모여

5월 단오에 창포 삶아 감은 머리 말리고

거시기네 혼사 날 동네잔치 마당을 열고

서까래 부러지면 주저 없이 가지 내어주고

마을에 어려움이 닥치면 구렁이 소리가 났다는데

 

그만, 지난여름 거센 빗날과 성난 바람에

팔십 먹은 노인이 팔 벌려 반나절은 재며

돌았다는 줄기가 부러져 밑둥치만 남았다

 

어떤 이는 이제 늙고 병들어 수명 다했다 하고

어떤 이는 산신이 노했다며 동제를 지내자 하고

어떤 이는 마을에 난리가 들 거라며 야단법석이더니

끝내 모두가 다 청산하여 마을을 떠나고

시절인연의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빈 집이라도 지켜야 한다며 저만 혼자 남았다

 

시끌벅적 하던 동네 소란이 사라지고 고요했는데

오랜 세월 맨 나중까지 그 자리 지키더니

죽을 수 없는 까닭 같은 게 남아

깊은 뿌리에서 노란 별 같은 새싹을 틔우더니

가지 쭉쭉 뻗어 生生한 잎들

햇볕에 찬란하게 빛나는 거였다

 

떠났던 사람들 다시 돌아와 한참을 쳐다보며

떠나던 날의 다부지고 오진 각오

한참을 부끄러워하였는데 뿌리 깊은 나무는

비바람에 부러져도 다시 살아나는 법을 알아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용기가 있어

죽음조차 온전하게 거부하여 피어나는 거였다

 

겨울에도 동네 어귀 갈림길에 홀로 우뚝 서서

잎새 떨구고 남은 줄기로 싸락눈을 받아치며

저가 만들 그늘의 넓이를 한 뼘 키우려

정갈하고 곧은 자세 흐트러지지 않고

제 속에 단단하게 나이테를 품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