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철사 - 비무장지대

nongbu84 2018. 11. 26. 14:03

 

비무장지대 - 겨울에 철사를 만지다

 

버드나무는 겨울에도 이기적이지 않았다 대출받았던 푸른 잎들 다 갚고 제 안에 나이테를 겹겹이 둘러쳐 울타리를 세우고 그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 속의 가장 중심에선 또 한 번의 반란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지만


철책을 지탱하느라 묶어 놓은 철사 오랫동안 몸을 파고들어 몸속에 아예 박혔다 운동장 한쪽에 서 있는 저 목조인 죄인, 옥죄어 오던 숨 막히는 날들,



겨울 나목이 되어서야 몸속까지 파고든 인연因緣의 멍에가 드러났다 빈 운동장에선 찬바람만 불고 모두들 침묵했다  


지난 여름, 나무 아래로 아득한 오후가 찾아들면 그늘은 회초리처럼 매웠다 얼굴에 착착 감기다가도 뺨을 후려치는 한풀이 춤사위를 한바탕 풀어 제꼈는데

 

둥근 바구니를 놓고 告子와 다투었던 孟子의 밑바탕이 그러했을 것이고 남편 떠난 아낙들의 살림살이가 그러 했을 것이고 버들잎 띄운 찬물을 얻어먹고 눈빛 환해졌지만 갈 길 잃은 나그네의 저녁이 그러했을 것이다


가난에 묶여 앉은뱅이가 된 어느 경계의 사람들에게나 인연因緣에 묶인 철조망 가시 하나쯤은 몸속에 박혀 한겨울에도 시린 가시를 삭여내느라 몸 뜨거워지는 날이 많았으니


꽉 조여 묶은 저 비무장지대 같은 허리, 그 안의 중심에서 실핏줄 잇고 마른 숨결이어 엮는 삶의 매듭들,


버드나무는 한겨울에도 뜨거워진 몸 아주 시원하게 식히느라 맨 배를 불룩 드러내고 있다


 

비무장지대 - 겨울에 철사를 만지다

 

버드나무는 겨울에도 이기적이지 않았다 대출받았던 푸른 잎들 다 갚고 제 안에 나이테를 겹겹이 둘러쳐 울타리를 세우고 그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 속의 가장 중심에선 또 한 번의 반란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지만

 

운동장 한쪽에 선 저 목조인 죄인, 철책을 지탱하느라 묶어 놓은 철사 오랫동안 몸을 파고들어 몸속에 아예 박혔다 옥죄어 오던 숨 막히는 날들,

 

겨울 나목이 되어서야 몸속까지 파고든 분단分斷(인연因緣)의 멍에가 드러났다 빈 운동장에선 찬바람만 불고 모두들 침묵했다

 

지난여름, 흙먼지조차 사라진 아득한 오후가 나무아래 찾아들면 그늘은 회초리처럼 맵게 흔들렸다 얼굴에 착착 감기다가도 뺨을 갈기는 한풀이 춤사위를 한바탕 풀었는데

 

둥근 바구니를 만들어 놓고 다투었던 맹자와 고자의 밑바탕 본성이 그러했을 것이고 남편 떠난 아낙들의 살림살이가 그러 했을 것이고 버들잎 띄운 물을 얻어먹고 눈빛 환해졌을 길 잃은 나그네의 저녁이 그러했을 것이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던 양반들은 춤도 아닌 춤을 추었을 것이지만

 

가난한 역사(인연)에 묶여 앉은뱅이가 된 어느 나라의 백성들()에게도 철조망 가시 하나쯤은 몸속에 박혀

 

겨울에도 차갑고 시린 가시조차 삭여내느라 몸 뜨거워지면 맨 배를 드러내 차갑게 식히는 것이었으니 꽉 조여 묶은 저 허리 같은 비무장지대, 그 안의 중심에선 실핏줄 잇고 숨결 이어 맨살 같은 새싹 가지 끝까지 피워 올리려 한 참 매듭을 엮고 있는 중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