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개기월식
nongbu84
2018. 12. 19. 10:58
개기 월식 .. 그 겨울 새벽
술집마저 모두 문을 닫은 새벽 골목은 어두웠다 보름달은 첨탑에 꿰어져 냉동실의 돼지 목살처럼 얼어 있다 철도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와 남녀의 앞을 막았다 라면봉지처럼 구겨진 어둠 속, 철길 옆, 고바우집이 검은 천막을 뒤집어 쓴 채 얼굴만 내밀고 있다 문을 열자 의자에서 졸고 있던 주인 할머니가 놀라서 깼다.
오래된 연탄가스와 고기냄새로 얼룩진 벽, 화투처럼 잘 개켜져 있는 찬장의 흰 접시들, 덥수룩한 커텐으로 가려진 일상, 담배잎처럼엷은 수작들, 흘러오고 흘러가는 생에 대한 느낌을 지우고 닫힌 가슴을 조금씩 여는 노란 주전자, 눈두덩처럼 불룩한 외로움, 못 견디고 안으로만 굽어 기울게 앉은 그림자, 붉은 입술에 달라붙는 검은 파래김같은 불안, 한 달 임대료를 꼬박 받으러 온 보름달. 공모하는 남과 여,
달이 완전히 사라지고 시간조차 어둠 속의 전봇대에 묶였다 남녀 사이에서 돼지 목살은 천천히 익었다 고기가 쥐어짜낸 기름이 살갗으로 튀었다 소주 두 잔을 마셨을 때 여자가 이야기 했다 “여기로 달을 오라고 했는데....얼음새꽃은 어디에서 피어날까?”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가장 깊은 내면의 죄만 식탁위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루치의 영혼이 영원히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 오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처음은 단 한번 뿐이야, 평생 잊을 수 없는 그 순간은 단 한번 뿐이지” 그 겨울 새벽, 지구가 벌레가 되어 달을 완전히 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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