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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무도회

nongbu84 2019. 9. 3. 14:11

 

가면무도회

 

햇볕의 눈빛이

대추나무 가시처럼 날카로웠다

층계를 올라가던 그는

잠시 계단에 걸터앉아

이내 운동화를 벗어 뒤집었다

신었던 길들이 쏟아졌다

운동화는 발이 썼던 가면,

발바닥은 길의 맨 얼굴,

굽이 닳은 바람의 발소리

귀 기울이던 그는

양말 자루에서 발을 꺼내

숨겨 두었던 길을 보여주었다

햇빛에 훤히 드러난

맨 밑의 납작한 시간에는

내일은 괜찮을 거야,

오래된 거짓말이

굳은살처럼 박혀있었다

 

 

 

가면무도회

 

햇볕의 눈빛이

대추나무 가시처럼 날카로웠다

마대를 메고 층계를 올라가던 그는

잠시 계단에 걸터앉아

이내 운동화를 벗어 뒤집었다

신었던 길들이 속에서 흘러나왔다

발바닥은 길의 하중이 쌓인 단층,

뒷굽이 닳은 바람의 발소리

귀 기울이던 그는

길어진 당신의 그림자를

층마다 주름잡아 널어놓았다

헐은 하루의 긴 얼굴,

철근 마디처럼 튀어나온 채

굽은 등에서 흘러내리는 어깨

어둠을 접은 팔소매 난간을 붙들고

층계 모서리마다 꺾여 접힌

축축하게 늘어진 자루,

감추어 두었던 길이 햇빛에 드러났다

바닥에 달라붙은 납작한 얼굴에는

내일은 괜찮을 거야,

오래된 거짓말이 젖어 있었다

그는 마르지도 않은 그림자를

다시 걸쳐 입더니

말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가면무도회

 

햇볕의 눈빛이

대추나무 가시처럼 날카로웠다

어깨에 마대를 메고 층계를 올라가던 그는

잠시 계단에 걸터앉아

신었던 길들을 되짚어 보려는 듯

이내 운동화를 벗어 뒤집어 보았다

운동화는 발의 가면,

발바닥은 길의 맨 얼굴,

뒤꿈치가 한참 닳은 바람의 발소리에

귀 기울이던 그는

길게 이어진 당신의 그림자를

층마다 주름잡아 널어놓더니

양말 자루에서 축축한 발을 꺼내

뒤꿈치를 바닥에 대어놓고는

감추어 두었던 길을 보여주었다

햇빛에 훤히 드러난

밑바닥의 납작한 얼굴에는

내일은 괜찮을 거야,

저녁의 오래된 거짓말이

굳은살처럼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