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물 위에 새긴 오후

nongbu84 2024. 9. 13. 09:07

 

물 위에 새긴 오후

                                                                          박 승 균

 

 

이끼 낀 수면을 걷어 내고

맑은 호수 위에 당신을 조각하였다

 

 

눈과 귀를 새기는데

자주 침 삼키던 소리와 울먹이던 목소리, 귓바퀴를 맴돌고

 

 

소문에 당신이 보낸 안부 몇 잎 수면에 내려앉았다

 

 

물결은 잔잔하게 파문을 노래하며

당신의 이름 은은하게 불렀다

 

 

헛헛한 소나기가 잠시 비껴갔으나

물 위 당신의 윤곽 지울 수가 없었다

 

 

호수에 애틋하게 새긴 오후를

손 집게로 들어 말리는 순간,

 

 

무심한 바람이 낚아채어 사라졌다

 

 

당신의 테두리가 물속으로 아련하게 저물어 갈 때

나는 늑골의 오래된 현들을 연주하였다

 

 

혼자 누워 있던 물푸레나무의

적요한 그림자가 천천히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