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그늘 감시원

nongbu84 2024. 9. 25. 10:51


그늘 감시원

                                                                                 박 승 균

 

 

휘어진 가지 사이로 넓어지는 잎들

 

바람이 숲을 흔들면

저 멀리에서 한 사람이 그늘 속으로 걸어온다

 

그는 원래 목공이 아니었다

그늘진 얼굴로

수심 깊은 나무를 지키는 산림 감시원

 

이제 부서진 벤치를,

방부목 데크를 고치는 사람

길게 뻗은 칡넝쿨을 걷어내며

길을 열어주는 사람

한 팔을 고사목 어깨에 올려놓고

아득한 시선을 보태며

가던 길 멈춘 사람

 

사라진 사람들을 호명하다 보면

에돌아 들려오는 숲 속 메아리

 

바닥에서야 그림자를 볼 수 있어

 

그림자를 읽어야

그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상처 난 문장들 하나 둘 다가와

구멍 성성한 나무를 쓰다듬고

 

그가 그늘을 빠져 나갈 땐

늙은 그림자만 남아 한참을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