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남행시초(南行詩抄)- 백석(白石)

nongbu84 2009. 10. 20. 11:03

 

 

창원도(昌原道)

- 남행시초(南行詩抄) 1


솔포기에 숨었다

토끼나 꿩을 놀래주고 싶은 산(山)허리의 길은


엎데서 따스하니 손 녹히고 싶은 길이다


개 더리고 호이호이 회파람 불며

시름 놓고 가고 싶은 길이다



괴나리봇짐 벗고 땃불 놓고 앉어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은 길이다


승냥이 줄레줄레 달고 가며

덕신덕신 이야기하고 싶은 길이다


더꺼머리 총각은 정든 님 업고 오고 싶은 길이다


*궤나리봇짐 : 개나리 봇짐. 양쪽 어깨에 매는 봇짐

*따ㅅ불 : 땅에 피우는 막불

*덕신덕신 : 덩실덩실, 흥겹게. 사람이나 동물들이 떼로 모여 움직이는 모양

*덕거머리 총각 : 장가들 나이가 지난 사내로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총각


통영(統營)

― 남행시초(南行詩抄) 2


통영(統營)장 낫대들었다


갓 한닢 스고 건시 한접 사고 홍공단단기 한감 끊고

술 한병 받어들고


화륜선 만져보려 선창 갔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

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


열이레 달이 올라서

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낫대들었다 : 낮에 들었다. 낮 때가 되어 장에 들어갔다.

*홍공단단기 : 붉은 공단천으로 만든 댕기.

*화륜선 : 이전에 기선(汽船) 을 이르던 말.

*가수네 : 가시네. 여자아이.

*판데목 : 경남 통영의 앞바다에 있는 수로 이름으로 1932년 해저터널이 완성된 곳이다.  판데다리라고도 하며 옛날에는 달고보리라고 했음.



고성가도(固城街道)

― 남행시초(南行詩抄) 3


고성(固城)장 가는 길

해는 둥둥 높고


개 하나 얼린하지 않는 마을은

해밝은 마당귀에 맷방석 하나

빨갛고 노랗고

눈이 시울은 곱기도 한 건반밥

아 진달래 개나리 한창 퓌였구나


가까이 잔치가 있어서

곱디고흔 건반밥을 말리우는 마을은

얼마나 즐거운 마을인가


어쩐지 당홍치마 노란저고리 입은 새악시들이

웃고 살을 것만 같은 마을이다


*얼린하지 않는 : 얼씬도 하지 않는.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는.

*시울은 : 환하게 눈이 부신.

*건반밥 : 잔치 때 쓰는 약밥.



삼천포(三天浦)

― 남행시초(南行詩抄) 4


 졸레졸레 도야지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 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런 사람들이 물러서서

어느 눈오신 날 눈을 츠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라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하니


*츠고 : 치고.

*기르매 : 길마. 짐을 실으려고 소의 등에 얹는 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