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脚陽春-나의 사랑
통영 바닷가 비탈진 집
nongbu84
2009. 12. 30. 15:22
통영 바닷가 비탈진 집
박승균
새벽까지 별들이 바다에 쏟아졌다.
물고기들은 별빛을 주워 먹고 부른 배를 두드렸다.
어둠 속에서 금빛 비늘이 반짝반짝 빛나
바다 가득 메밀꽃이 피었다.
새벽까지 바다는 달을 품었다.
만삭의 바다는 시큼한 살구가 자꾸 먹고 싶었고
자주 산 그림자를 삼켰다.
밤새 무거운 몸을 뒤척이며 출렁거렸다.
통영 바닷가 비탈진 집에서
나는 하룻밤을 묵으며
비린 미역냄새 가득한 청춘과
쌉쌀한 멍게 맛으로 감겨들던 우정과
화려한 산호의 무늬를 자랑하는 사랑을
이야기하였다.
집 주위에서 서성거리며 엿듣던 동백도
연애 소식에 놀라 화들짝 핏망울을 터뜨렸다.
그해 봄 동백은 밤을 자주 새웠고
나도 동백꽃처럼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떠나간 사람을 기다렸다
통영 바닷가 여름 밤
나는 달을 보며
송진처럼 엉겨 붙은 인연들과
새벽 논두렁을 둘러보던 아버지의 논흙냄새와
누나의 분 냄새가 묻었던 분홍색 베개와
눈물로 얼룩진 연애편지와
조약돌처럼 따뜻한 사랑의 맹서를 생각했다.
그 해 여름 통영바닷가 비탈진 집에는
포도송이가 통영 계집애의 검은 눈동자를 그리워하며
까맣게 익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