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빗자루를 잡으면 꼭꼭 묶인 매듭과 꺼칠하게 닳고있는 자루의 느낌이 다가옵니다.
'스승의 날'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빗자루를 잡고 청소를 합니다. 매일 종례후의 일상과 마찬가지로 빗자루를 들고 아이들과 함께 청소를 합니다. 청소를 하면서 아이들의 고단한 일상을 만납니다. 시험성적때문에 투덜거리는 소리부터 집에 가면서 오락실에 들러 한판 승패의 파문에 휩싸일 기대감까지 아이들의 일상이 먼지 구덩이속에서 묻어 나옵니다. 스승의 날에도 교사는 그저 교사일뿐입니다. 교사는 그저 아이들과 함께 청소하면서 아이들이 겪는 고단함을 함께 나누는 사람일뿐입니다. 교사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눈동자를 깨끗이 닦아내며 그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일뿐입니다.
'스승의 날'을 더 이상 상품화된 존경으로 치장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그 거추장 스러운 허례허식이 자랑스럽지는 못하지만 정성으로 하루하루 살려는 교사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스승의 날 교사들은 이미 뉴스거리로 전락한 채 하루의 일상이 잔잔한 파문과 함께 부서져 갑니다. <상품화된 존경과 그 존경화된 상품>의 거래시장이 열립니다. 그곳에서는 상처받고 먼지 뒤집어쓰고 땀흘리는 교사 한명 한명은 사라지고 대상으로 전락된 교사만이 아름답게 포장되기도 하고 모든 문제의 원죄자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의 기쁨과 슬픔 때문에 상처받고 아픔을 느끼고 슬퍼하는 교사의 기쁨과 슬픔은 없습니다. 오직 물량화되고 수치화된 기쁨과 슬픔만이 일정한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을 뿐입니다. 교사는 그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이들의 삶을 함께 공유하면서 먼지마시고 목이 쉬어 터지고 다린 바지주름이 구겨진채 하루를 마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과 장미꽃을 받았습니다. 꽃을 쥐어드는 손으로 장미꽃 가시가 콕콕 찌르며 아픔이 전해옵니다. 그 아픔을 꼭꼭 누르면 부끄러움만이 살아납니다. 풍문으로 들려오는 군대간 아이들의 외로움이 찾아오고 소년범으로 옥살이를 하는 아이의 아픔이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위로만 오르는 꿈에 취해 살아가는 아이들의 소식에 옆으로 나아갈 수 있는 꿈 하나 가르치지 못한 부끄러움이 전화벨 울리듯 들려옵니다.
스승의 날에 그저 빗자루를 잡고 청소를 하였습니다. 빗자루를 잡으면 자루를 묶은 줄매듭과 까칠하게 삐져나온 줄기 몇가닥과 반들반들하게 닳고 있는 자루의 느낌이 파문처럼 전해집니다.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면 교실을 다녀간 아이들의 발자욱 소리가 웅웅 쾅쾅 울리며 들려옵니다. 힘없이 뒷굽을 구겨신던 아이의 발걸음부터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끼와 에너지를 발산하며 교실에서 뛰어다니던 발걸음까지 들여옵니다. 지금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걸음을 걸으며 넘어지고 무릎까지며 다시 일어서는 그 아이들의 꿈과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스승의 날에 학부모들은 온갖 다과와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누군가는 거래를 트기 위해, 누군가는 내 아이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누군가는 내 아이의 봉사시간과 성적을 위해, 누군가는 꼭꼭 내 아이에게 참고서를 챙겨주는 담임을 위해 그 연찬회에 돈 몇푼을 던지고 참가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되돌아서서 걸어나왔습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도 교실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하다가 고개만 숙인채 아이들은 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햇살을 등짐삼아 걷기보다는 무거운 참고서와 문제집가방에 짓눌려 앞친구의 가방크기만을 바라보며 아이들은 걷고 있습니다. 잠시 동안의 상품거래시장의 활기로 생활을 잊어버리기에는 생활의 무게가 너무 무겁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 뛰놀며 몸짓을 나누었던 친구들이 더욱 그리워질 뿐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과거의 회상과 미래의 환상만을 살아가고 바로 지금의 사람과 일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승의 날에 평소와 다름없이 빗자루를 들고 교실을 청소하면 자루를 묶은 매듭과 튀어나온 줄기 몇가닥의 까칠함이 손으로 전해집니다. 그 까칠함과 함께 떠난 아이들의 풍문이 들려오고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의 아픈 일상이 찾아옵니다.
'啐啄同時-나의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사는 거울 앞에 선 사람 (0) | 2010.06.27 |
---|---|
다시 이땅의 교사로 서기 위하여 (0) | 2010.06.05 |
내가 지은 죄, 이별할 몇가지 (0) | 2010.04.11 |
교육이란 자기 구원의 길 (0) | 2010.04.11 |
대화-샘물의 원리 (0) | 2010.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