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삶이란 사랑이다] : <민주에게>
80년대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위하여 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으며 주먹 불끈 쥐고 외쳤다. 교사들은 “민족 민주 인간화”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으로 담벼락에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썼다. 거리를 떠돌던 <민주>가, 교실에서 울려 퍼지던 <민주>가, 김지하가 써 놓았던 <민주주의>가 지금은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네 삶에서는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
사랑하는 민주에게
민주야! 안녕? 네게 편지를 쓴다. 요즘 나의 근황부터 전하마. 배춧잎 같은 편지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박하사탕 같이 싸한 내용을 담지 못하고 밤거리를 헤매는 나의 소식부터 전하려니, 마음이 무겁단다. 나의 요즘 근황과 소식은 내가 지내온 연혁과 연관이 있단다.
80년대 초 대학생활, 가난의 탯줄을 끊고 싶었으며, 무의미를 넘어서고 싶었다.
80년대 중반 군대생활, 조직의 쓴맛을 보며, 조직적인 반항보다는 개인적인 취기를 배웠다.
80년대 후반 복학, 조직화된 후배들을 만나 독서토론을 즐기며 술을 배웠다.
90년대 초반 대학 졸업시기, 실연과 취업의 문제 그리고 독서토론과 시창작 모임을 했다.
90년대 중반 취업, 2년간의 강사생활과 고등학교 정교사로 출발했다.
90년대 후반 학교, 교사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개인적인 교육활동을 했다.
2000년 전후, 전교조 교사로서의 생활하면서 교육의 모순을 만났다.
00년도 초반, 분회장을 하면서 행복한 분회활동을 시도했다.
05년 현재, 아버지로서의 독재성과 권위성을 발견하며 밤거리를 헤매고 있다.
민주야! 내가 살아온 20여년의 생활 속에서 담벼락에 썼던 민주를 삶속에서 실천하는 과정에 있단다. 이제는 <민주적 삶>으로 내 삶과 생활을 변화시켜야 할 시기란다. 사람은 그냥 인생을 사는 존재가 아니란다. 하루하루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문제를 가지고 구체적인 한 개인을 만나 살아간단다. 하루의 생활 속에서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우신고등학교 철학교사이고, 비담임이란다. 아버지로서 나는 나의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내 안에 숨겨진 욕심과 폭력성을 만난단다. 내가 살면서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상황논리로 전환시키기에는 내 삶이 허락하지 않는단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라는 변명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실천해야해’라는 발전이 내 삶에 주어져 있단다. 아버지로 하루를 살면서 나는 내 아이가 더 똑똑하고 내 아이가 더 뛰어나기를 바란단다. 내 아이의 행복과 번영의 문제가 내 아이로만 자꾸 귀착되는 한계점을 만난단다. 바로 그 지점, 가족의 이기성과 사회적 삶과의 연관되는 지점이 바로 행복과 민주로 나가는 틈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알고 있단다. 머릿속의 깨달음이 삶 속에서 녹아내리지 못하고 관념으로 전락할 때, 앎이 실천으로 완성되지 못할 때 껍데기뿐인 삶은 지속되겠지. 좋은 아버지의 모습 100가지를 알고 있는 사람보다는 단 한가지의 좋은 행동을 실천하는 아버지가 진실한 사람이지.
며칠 전 영등포 책방을 가면서 큰 아이가 차안에서 묻더군. “아빠!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야! 아빠처럼 엄격하고 권위적이면 안돼지.” “민주주의가 뭔데?” “내가 원하는 일도 들어주고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내 마음대로 하는 것도 허락하고 내 생각을 존중해주는 거잖아!” “그럴러면 네 스스로 결정해서 책임지려면, 너는 경제적 의존상태부터 아빠한테서 독립해야 할텐데.......” “아빠가 말 잘하는 것은 못따라가-”
민주적인 아버지는 아이들의 의견과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는 일이겠지.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일이겠지. 아버지의 욕심에 의해 아이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의 꿈을 만들고 그 꿈의 힘으로 아이스스로가 성장하는 것이겠지. 아이가 공부하고 학원을 다니는 이유가 혼자의 출세와 번영이 아니라 사회가 정직하고 민주적인 사회가 되는데 기여함에 있어야겠지.
둘째 아들 녀석은 요즘 자주 싸움에 휘말리고 있어.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고, 선생님께 혼나기도 하고, 형에게 자주 대들기도 하지. 얼마 전에는 여자아이와 싸우고, 방학 때까지 한 달간 청소하라는 담임의 말에 못하겠다고 안경을 패대기치다가 크게 혼났지. 놀리고 도망가는 여자아이 집 담을 보려고 담 앞에 서있는 자동차에 올라가기도 했지. 피아노 학원에서는 장난치다가 여자아이와 부딪치고 때리기도 했지. 억울한 것도 많은 가봐.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아들 녀석의 잘잘못을 가리는 손들기 시합을 했으니 아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어. 잘못했다고 책으로 머리를 맞는 일도 벌어지기도 했지. 친구들의 싸움을 말리다가 손톱으로 손등을 긁히기도 했어. 그런데 착한 녀석이야. 맞고 울면서 집에 가는 친구를 집에까지 배웅해 주기도 하고, 무거운 책가방을 들어주기도 했지. 무척 여자아이들한테 인기도 있어. 사귀자는 반여자아이의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지.
그런데 말야.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담임을 찾아가 따지고 싶은데, 내 아이의 잘못이 더 크게 보이는 거야. 내 아이의 잘못이 왜 그렇게 맷돌만큼 무겁고 크게 보이는지? 꼭 내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 그래 민주적 삶이란 아버지로서 아들의 부당한 대접에 분노하고 화내고 사과 받아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 일일거야. 하지만 내 아이의 잘못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가르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겠지. 화내고 따지는 일을 하지 않은 것과 반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 사이의 틈새를 어떻게 조절할지 잘 모르겠어. 그 둘의 조화가 민주적 삶이겠지. 또 사안별로 화 낼때 화 내고, 반성할 때 반성하는 것이겠지. 그런데 그 사안이 무엇이고 어느 때 화와 반성이 필요한지 그 판단이 필요한 것 같아. 나는 교사이면서 아버지잖아. 아버지이면서 교사잖아. 그러면 그냥 아버지와는 좀 달라야 할 것 아냐. 그래 <좀 다른 것>, 그것이 민주적 아버지로서의 출발점일거야.
아내와는 잘 지내고 있지. 10년 넘게 살 부대끼며 살다보니 포기를 통한 문제해결을 많이 배운 것 같아. 아직 진정한 이해와 관용, 아량과 베품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어. 토요일 아내는 친구들과 여행을 갔지. 그런데 전화 한 통 없고 전화도 받지 않더라고......나중에 통화했을 때 막 화를 냈지.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어. 그런데 말야. 아내에게 화를 내고 났더니, 그 화는 화살이 되어 내 가슴에 박히는 거야. 민주의 기본 성품인 존중과 이해, 화해와 협력의 가치는 사라지고 내 욕심과 불관용만 남았어. 힘들었지. 사랑의 원리만 알지, 그 때 그 상황의 아내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 민주적인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고 아내의 생각을 존중하고 바로 내 옆에 있는 아내와 협력하고 문제를 함께 나누고 함께 이야기 하면서 하나씩 행복을 만들어 가는 일일거야. 내 아내의 도움과 지지 없이 내가 어떻게 무거운 교직을 담당해 왔겠어. 세상에서 나를 믿어주고 사랑하는 단 한사람,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
집에서 겪는 생활상의 문제는 학교에 와도 고스란히 찾아와. 교사중심적인 교육활동을 내가 여러 차례 이야기 했을 거야. 중심은 늘 주변을 만들고, 주변은 늘 중심에서 맴돌며 소외되는 생활의 반복이지. 각자가 그 때 그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서는 것, 스스로가 각자의 삶에 정성을 기울이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 교사와 학생의 관계망 속에서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면서 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필요해. 교육을 하는 이유를 아이들 속에서 찾지 않았으면 해. 아이들이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 하지 마. 그것은 별 볼 일 없는 교육활동을 치장하는 변명에 불과한 것이야.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모르면서, 이 자리에 서는 정당성이 없으면서 마치 아이들이 문제라 내 고귀한 교육적 뜻을 펼치지 못한다고 둘러대지 말란 말야. 교육은 나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 내 꿈에서 교육적 이유가 있는 것 같아. 내가 그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그 일을 열심히 하고 보람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일 을 할 수 있어야 하지. 내 교육적 이유가 민족 민주 인간화라는 모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일 뿐이야. 내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교육이란 나도 타자화된 수동적인 삶을 사는 것에 불과하지. 기계의 부품처럼 갈아 끼울 수는 없잖아. 사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냐. 그 때 그 상황을 살고 있는 구체적인 개인을 의미하지. 그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할 일이 교육이야. 그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지. 바로 교육은 “바로 지금 이순간의 내가 하는 일이고, 바로 옆에 있는 그 사람이 하는 일”이지. 그러니까 교육의 출발은 바로 “나와 너”란 말이지. 더 정확히는 내 자신이란 말이야. 수업시간의 기술과 테크닉이 교사 자신의 인품과 삶을 뛰어넘을 수는 없잖아.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가의 기계공학적인 교육방법론으로 교육을 전락시키지 말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가의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교육을 해보자구. 그게 바로 민주적인 교육 아니겠어.
사회교과서에 나온 민주의 개념을 전달하는 스피커보다는 내가 사는 모습에서 민주적인 삶을 살아야 할 거야. 거리에서 외치던 민주 네가 이제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살아야 하지. 담벼락에만 쓰고 남몰래 외쳤던 “민주주의여! 만세”를 이제는 수업시간에 아들과 산책을 하면서 함께 살아야 하지. 이제 나는 담벼락에 써 있던 민주의 벽화를 내 마음에 그리고, 거리에서 떠돌던 민주를 가정에서 학교에서 함께 살아야겠어. 왜냐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어. 네가 없으면 내 잠자리가 너무 불편하거든.
민주적 삶이란 사랑의 한 부분일 뿐이야. 가정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학교의 학생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이 뛰어 노는 산을 사랑하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을 사랑하고, 아이들이 달리는 운동장을 사랑하고, 저녁식사의 오순도순한 분위기를 사랑하고, 늦은 오후의 퇴근시간을 손잡고 걸어가는 길을 사랑하고, 함께 걷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일거야. 만일 그 사람을 상처받게 하면 화도 내고, 만일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에 병이 깨져 있으면 줍고, 만일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에 못이 있으면 없애야겠지. 교실이 더러우면 청소하고, 은행나무가 말라가면 물을 주고, 교실의 화분에 말라 화초가 죽으면 안타까워하는 일일 거야. 그래 그렇게 살자구. 바로 내가 그 일을 하면서...............그럼 안녕.
2005년07월18일 여름지기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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