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脚陽春-나의 사랑

쉰, 사랑을 되돌아보다 - 사랑하는 후배 선생님께

nongbu84 2014. 10. 24. 09:52

 

 

쉰, 사랑을 되돌아보다 - 사랑하는 후배 선생님께

(2004.11.15일 다른 학교로 떠나려는 후배선생님께 쓴 글)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비가 내리고 찬바람 불고 낙엽이 다 떨어지는 늦가을의 쓸쓸함만은 아닌 듯합니다. 나는 사람관계가 무척 서툰 사람입니다. 사람관계의 불편함을 참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사람관계의 단절은 더욱 그렇습니다.

스무 살 풋사랑의 헤어짐을 겪은 이후 사람에게 정을 주는 일을 조심하였습니다. 대신 일을 통해 내 열정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속에도 사람이 있고, 뜻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내 허물과 단점까지도 이해하는 친구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정을 주고 싶었고, 다시 내 마음속에 사람을 담았습니다.

선생님은 더욱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떠나려고 할 때 그러지 않을 거라 기대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 애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로 다가오는 그럴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준비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상처받지 않을 마음을 준비하였습니다.

나이 들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법보다는 상처받지 않을 정도의 인간관계를 만드는 일에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정을 주는 일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고슴도치의 사랑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슴도치는 날선 추위가 다가오면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고 다가섭니다. 하지만 서로 다가설수록 가시에 찔려 상처를 받고 아픔을 느낍니다. 상처 때문에 서로 물러섭니다. 하지만 추위는 서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듭니다. 본능적으로 거리를 좁힙니다. 하지만 다시 상처를 받습니다. 두세 번 가시를 찔리는 아픔을 겪고 나면 고슴도치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의 간격을 만들어 냅니다. 서로 상처받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말입니다. 서로 아픔을 느끼지 않고 간격을 두고 추운 겨울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나이 들면서 겨우 적당한 거리와 간격을 두어 사람 사귀는 법을 배웠습니다. 참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단 한번 목숨처럼 사람을 사랑하지도 못하고, 목숨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 세상을 껴안지도 못했다는 후회가 남을 듯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거리를 두려 해도 세상은 적당한 거리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침묵하는 일이 부끄러운 반성으로 다가왔으며, 거리 시멘트 바닥의 찬 공기를 온 몸으로 느껴야 하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추운 날 옆에 앉아 주먹 불끈 쥐던 선생님의 곱은 손이 너무 미워 내가 끼고 있던 장갑을 주머니에 슬그머니 넣어야 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집에 일찍 들어가기보다는 거리를 헤맸으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 참 좋았습니다. 너무 좋아 약간의 단점이 보이면 더욱 미웠습니다. 친한 상대의 단점이 맷돌만큼 무겁게 보이고 커 보였습니다. 잠시 동안의 거리를 두기도 했지만 사람 사는 일은 역시 사람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사람사이에 길이 있고, 사람사이에 뜻이 있었습니다.

오늘 선생님의 메일을 받고 눈물을 왈칵 쏟을 뻔하였습니다. 내게는 큰 반가움이었습니다. 교육이 우신학교에서만 이루어질리 없지만 한 10여년을 함께 생활하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이 다가왔습니다.

새벽 4, 관악산 일출을 보기위해 눈발을 뚫고 산에 올라 연주암에서 아이들과 촛불을 보면서 새해 소망을 빌던 일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 때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사는 행복이 교사의 참된 행복이라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같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언제나 용기가 생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의도 섬에 다녀오면서 비 내리는 배위에서 아이들과 노래 부르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잘 하지 못하고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선생님을 보면서 교육이 혼자 모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살리면서 부족한 것은 옆에 있는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의도 가기 전에 읽었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교육이란 바다에 돌멩이 하나 던지는 일이었음을 깨달으며 겸손을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돌멩이 하나 던지면 파문 일으키다가 다시 사라지는 일말입니다. 지금은 그 파문이라도 던질 돌멩이를 내가 던지고 있는가 스스로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스무 해 동안 손에 꼭 쥐고 있었던 조약돌 같은 진정한 마음이 아니면 교육을 해내기가 무척 어려울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약돌에는 손바닥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어 그 온기마저 던져주고 싶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했던 일 중에 선생님의 사랑이야기를 들었던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저처럼 가난한 자의 사랑노래는 질퍽거리는 비오는 날 이야기지만, 선생님의 사랑이야기는 참 재미있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가을의 선생님의 로맨스는 내게는 무척 슬픔이었고, 불륜(?) 같아 보였습니다. 지금은 한 여인을 떠나보내며 막바지 바람을 피우고 있지만 그 로맨스는 마음으로 오래 새겨 가슴에 묻어둘 연애 같습니다. 선생님이 일상 속에서는 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아이들을 대하면서는 결코 풀 수 없는 매듭을 잡고 있는 일상을 답답하게 느끼는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공교육 운동에 대한 피로로부터의 도피처로서 대안 교육을 생각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불륜(?)은 되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일이었음을 생각했습니다. 제대로 사랑하기 위한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일상의 아이들을 만나며 그 아이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선생님이 되고자 함임을 압니다. 가을 연애 한 번에 아이들을 사랑하기야 힘들겠지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을바람 한 번 불었다고 교육을 향한 열정과 도도한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반에 풍란이 한 달 전부터 꽃을 피웠습니다. 주도종 선생님의 <나는 교실에 붙잡혀 가고 싶지 않다>는 글이 분회보에 실린 다음다음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소란에 몸살을 앓던 풍란이 주말 아이들이 없는 조용한 시간에 꽃을 피웠습니다. 한 송이 피더니 또 한 송이가 2주일 지난다음에 피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 세 번째 꽃이 피어나려고 꽃잎을 살짝 열었습니다. 아이들의 소란 속에서도 난 꽃이 피는 것을 보면 아이들의 그 소란조차도 이쁜 일입니다. 지난 토요일 아이들과 내기도 하였습니다. 월요일 아침까지 꽃잎이 피면 수능 다음날부터 730분까지 등교하여 아침공부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꼭 필거라고 믿습니다. 또 피지 않아도 아이들을 변화시키려는 몸부림이었음을 아이들은 알 것입니다.

 

지난 가을은 참으로 찐~하게 보냈습니다. 3개월 간 갖고 있던 고민을 매듭지으니 솔직히 마음이 몹시 편안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랑했던 여인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아직까지 가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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