啐啄同時-나의 교육

때리지 마라! 아프다!

nongbu84 2014. 11. 7. 09:00

 

 

 

 

1. 내가 알고 있는 매와 체벌

 

매와 체벌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손쉬운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매는 이중인격을 형성합니다. 폭력과 힘 앞 에서는 예의바르고 말 잘 듣는 척하지만 뒤돌아서면 자신의 통제력을 상실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현역시절의 군기 잡혔던 사람이 예비군이 되면 군화 끈 풀어놓고 군복 단추는 푸는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이치와 같습니다. 살면서 남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결국은 옳음과 옳지 않음의 판단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합니다. 그래서 옳은 일에는 침묵하고 옳지 않음에 협조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용기를 상실한 채 살아갑니다.

 

매와 체벌은 기본적으로 강제성과 타율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제력으로 형성된 내용은 더 큰 강제력만이 제압할 수 있고, 타율적인 지배에 길들여진 태도는 감시와 통제의 장치를 늘 요구합니다.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책임이라는 자발성과 자율성의 태도를 상실한 채 살아갑니다. 처음에는 목책이었던 감옥장치가 시대가 지나면 쇠창살로 바뀌는 법입니다. 더 큰 힘과 권위를 숭배하며 자신도 그 그늘에서 안온한 편안과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주체적인 행동보다는 길들여진 습관의 내용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의 주체성이 없으므로 허황된 권력숭배와 물신숭배로 자신의 치장하며 소유만을 늘려갑니다.

 

매와 체벌은 아이들이 생각할 틈도 없이 무조건 성적에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강요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자신 스스로 깨달은 자각을 통해 자신의 의지로 노력하기 보다는 강압적이고 타율적인 힘에 의해 결코 내면화되지 못한 것에 의해 질질 끌려갔습니다. 강제와 타율성을 강요하는 매와 체벌의 교육방법은 그 안에서 일상화된 폭력에 둔감하게 만듭니다. 폭력은 좋은 의도와 목적을 지녔다면 정당화되고 오히려 권장할만한 지도방법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폭력은 폭력일 뿐이며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존중에 치명타를 가합니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상대의 눈빛과 감정의 흐름을 읽어내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또한 자기 삶이 무시 받아도 대응할 수 없는 무력함으로 이끌어갑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정성을 기울이며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모습보다는 자기에 대한 미움을 내면화해 갑니다. 자신은 미움의 대상이며 맞아도 좋다는 식의 논리로 빠져듭니다. 자기 삶에 대한 존중을 상실하고 오히려 자신을 부끄럽고 숨기고 싶고 결코 자랑하고 싶지 않은 자화상으로 만들어갑니다.

 

매와 체벌에 의존한 교육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상실하고 또한 문제해결방법을 힘과 권위에 의존하여 풀어가는 의존적 인간형으로 이어집니다. 일제시대의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들을 교육할 때 바로 그랬습니다. 아이들을 불러내어 서로의 뺨을 치게 하고 결국은 그 상황에서 어쩔 수없는 아이들이 상대의 뺨을 치면서 울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힘없고 약한 자기에 대한 한없는 미움은 처음에는 상대를 때리지 못하던 상태에서 상대의 뺨을 철썩 철썩 치게 만듭니다. 미움만이 분노만이 길러집니다. 살면서 만나는 문제를 분노와 미움의 방법으로 이해하며 그 해결도 강압적이고 타율적으로 해결해 갑니다.

결국 매와 체벌에 의존한 교육방법은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을 보잘 것 없는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일을 서슴없이 진행하게 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누군가의 통치에 의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비주체적인 인간으로 만듭니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이성과 판단에 의해서만 자신을 규제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로부터도 함부로 침해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 스스로가 바로 침해받은 상태를 자신의 모습으로 인정하며 또한 거듭 가해자로 변해갑니다.

자신에 대한 존중과 자기 삶에 대한 애정을 상실한 사람은 결코 남을 존중할 수 없습니다. 존중과 이해의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왜 중요한지를 알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다름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차별적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2. 역사속의 매와 지도력

 

역사적으로 학교현장에서 매와 체벌이 일상화되는 계기는 일제시대의 교육에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강제와 타율로 일본의 문화와 언어를 교육시키고자 칼을 차고 들어오는 교사가 필요했고, 말 잘 듣는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교사의 힘과 상징조작은 필요합니다. 그 무자비한 체벌과 매는 사람을 순한 양으로 변질 시켰습니다. 그 어떤 분노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분노하는 마음조차 스스로 검열하여 감추었습니다. 힘과 권위에 굴복하고 오히려 자신이 닮을 대상으로 동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제시대 이후 우리는 주입식 교육의 필요성에 의해 교육현장에서 또 한번 매와 체벌에 의존한 교육을 하였습니다. 한 시간에 가장 많은 양의 정보를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아이들은 수동적으로 앉아 조용하게 있어야 했습니다.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서로의 다른 의견을 교환하며 합의내용을 도출해가는 과정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침묵과 복종만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가장 빠른 정보를 알고 있는 교사에게 아이들은 믿고 있었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대량생산과 즉시즉시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며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아이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교사의 폭력과 체벌은 가장 빠른 시간에 교육적 효과를 내는 좋은 방법으로 선호되고 정당화되었습니다. 가장 많은 내용을 암기하고 숙달하는 데는 무서움을 통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을 전달하고 그 전달된 내용을 명령받은 아이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제 시대 이후 교사들의 지도력이 형성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곳은 군대입니다. 군에 들어가 명령과 복종의 문화 속에 길들여집니다. 명령불복종은 가장 큰 잘못입니다. 복종을 받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거대한 체계 속에서 받은 명령을 책임 껏 수행하던 단계는 계급의 상승에 따라 명령을 내리는 상급자로 올라갑니다. 그때부터 명령을 받아오면서 키웠던 분노나 아픔은 오히려 명령자의 권위라는 이름아래 숨겨집니다. 대신 명령의 특권과 선민의식은 아무런 반성과 검토의 작업 없이 다시 주어진 명령을 전달하는 녹음기의 역할로 전락됩니다. 더 큰 명령자의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알아서 군기를 잡으며 하급자에게도 명령합니다. 그 과정에서 명령에 대한 복종을 이루도록 매와 체벌과 기합은 일상화됩니다.

군에서 배운 지도방법은 학교현장에 돌아왔을 때 아주 효과적인 방법으로 동원됩니다. 아이들 위에 제왕으로 군림합니다. 교실 안에서 교사는 제왕의 위치에 서서 명령하고 그 명령에 어긋나는 행위나 말을 매와 체벌로 제압합니다. 전시적인 효과로는 매와 체벌의 방법이 아주 유효합니다. 그러면서 가끔은 등 한번을 쓰다듬어 줍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그 지배자의 권위에 존경심을 갖고 복종합니다. 말 잘 듣고 성적만을 생각하며 오로지 담임의 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3. 매와 체벌에 대한 나의 생각 : 나는 매와 체벌을 반대한다.

 

매와 체벌은 트집을 잡아 통제하는 방법이지 교육이 아닙니다. 교육현장에서 매와 체벌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옷과 머리모양의 통제입니다. 많은 숫자를 통제하여 질서 잡힌 듯한 보여주기 효과를 내려면 복장단정과 용모단정이 요구합니다. 다 똑같이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조금만 튀어나오면 두더지머리 나오면 두들기듯 매와 체벌을 가합니다. 정해진 3센티미터의 머리길이에서 벗어나면 문제아가 되어 매의 대상이 되며 옷을 입되 허리띠를 매지 않으면 역시 질서를 어지럽힌 중죄가 선언됩니다.

매와 체벌은 아주 사소한 문제, 심지어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중요한 교육적인 문제로 변화시키고 그렇게 만들어진 교육적인 문제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여 교사의 가치관을 지배합니다. 보여주기 위한 전시교육체제와 겉으로 드러난 깔끔함만을 강조하는 외형적인 교육에 힘쓰게 만듭니다. 그래서 괜한 트집을 잡습니다. 머리가 길다든가 옷 모양이 이상하다든가 하는 트집을 아이들에게 매와 체벌을 가하고 억지로 권위의 껍질을 두껍게 만들어 갑니다.

이런 통제는 산업사회의 통제방식에서 기인합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근면하고 검소한 생활은 산업사회의 효과적인 생활방식입니다. 이런 가치관과 생활태도는 학교의 교실에서는 지각자 단속과 복장에 대한 통제로 이어집니다.

 

 

매와 체벌의 교육에서는 살아있는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매와 체벌로 이루어지는 교육에서는 아이들은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숨기는 법입니다. 매와 체벌의 교육방법은 타율과 강제에 길들여지고 결국은 힘에 대한 숭배만을 강요합니다. 매와 체벌은 자신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애착을 미움과 부끄러움으로 만듭니다. 매와 체벌은 폭력을 일상화하면서 그 피해의 아픔을 나중에는 가해의 쾌감으로 바꾸어가는 사람을 만듭니다. 매와 체벌은 자신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 힘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부리면서 힘을 발휘하는 인간에 대한 지배욕을 발달시킵니다. 매와 체벌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른 책임성을 시대와 상황과 환경의 탓으로 돌리며 게으름과 나태함을 정당화시킵니다. 매와 체벌은 주체성상실과 무책임을 치유해주는 특효약을 자리 잡고 스스로의 삶의 창조라는 즐거움과 성취의 동기와 과정을 무시합니다. 매와 체벌은 스스로 살아가는 인간보다는 타율적으로 키워지고 타인의 눈높이에 자기를 재단하여 맞추려는 눈치 보기의 명수로 만듭니다. 매와 체벌은 늘 좋은 가치의 실현이라는 명분아래 진행됩니다. 좋은 가치와 짝을 이루어 자신을 정당화시키고자 애를 씁니다. 그 결과 목적을 통해 과정의 악을 뒤덮어 버립니다. 교육은 좋은 가치를 좋은 교육방법으로 행하는 활동입니다. 좋은 가치를 구분할 줄 알며 그 중에서 적극적으로 좋은 가치를 실현하려 힘쓰며 적어도 나쁜 가치에는 협조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는 활동입니다. 좋은 가치는 좋은 방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좋은 방법 그 자체가 하나의 교육이며 좋은 가치입니다. 존중받는 말과 존중받는 생각과 이해하는 아픔과 나누는 슬픔의 그 과정자체에 이미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어떤 가치도 주입될 수 없으며 오직 스스로가 존중받는 과정에서 인간존중을 실현하며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수로 전락된 의견조차도 토론의 과정 속에서 융화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