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감나무이야기 ..............문인수
나는 그때 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6. 25 전쟁이라는 것은 그저 거대한 불길입니다. 폭격 맞은 우리 집 아래 채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지요. 캄캄한 밤중이라 그 불 뿜는 어둠의 늴름거리는 표정이라니, 춤이라니, 단지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래채 한 쪽 곁에 서 있던 아름드리 단감나무가 불길과 함께 휩싸였는데요. 감나무는 죽어가다가······ 몇 해에 걸쳐 가까스로 되살아났다고 합니다. 그것은 나도 알고 있는 일입니다만, 둥치에 입은 시꺼만 화상을 해마다 조금씩 안으로 감싸안으며, 또한 불 탄 가지 잘라낸 자리엔 아픈, 아픈, 새싹이 터져 오르고요, 그리하여 감나무는 다시 새로 지은 아래채를 시원하게 덮어 나갔습니다. 먼 방올음산 꼭대기에까지 그 키를 높여 마침내 땡감이며 홍시 주렁주렁 매달았습니다.
열 살, 열 다섯 살 그 무렵이었겠지요. 나는, 내 또래들은 이 단감나무에 뻔질나게 매달렸고, 손에 닿는 대로 이 감 저 감 일일이 앞니로 찍어 씹어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감 맛은 몹시 떫었습니다. 열에 일곱은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세월 가면 돌아온다 괜찮아진다 숙모를 달랬지만, 실제로 아버지는 월북한 숙부에 대한 이러저러한 정을 차츰 잊어가는 듯도 했지만, 아니었습니다. 몇 해 전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 속내는 끝내 지금까지도 저 감나무 그 목탄의 쓰라림, 분노 뼛속 깊이 깨물고 있었지요. 그 지옥의 쓰디쓴 맛, 그 기억 오히려 하늘 높이 붉게 매달아놓고 있습니다.
간통 ......................문인수
이녁의 허리가 갈수록 부실했다. 소문의 꼬리는 길었다. 검은 윤기가 흘렀다. 선무당네는 삼단 같은 머리채를 곱게 빗어 쪽지고 동백기름을 바르고 다녔다. 언제나 발끝 쪽으로 눈 내리깔고 다녔다. 어느 날 이녁은 또 샐 녘에사 들어왔다.입은 채로 떨어지더니 코를 골았다. 소리 죽여 일어나 밖으로 나가 봤다. 댓돌 위엔 검정 고무신이 아무렇게나 엎어졌고,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흥건히 쏟아져 있었다. 내친김에 허둥지둥 선무당네로 달려갔다. 방올음산 꼭대기에 걸린 달도 허둥지둥 따라왔다. 해묵은 싸릿대 삽짝을 지긋이 밀었다. 두어 번 낮게 요령 소리가 났다. 뛰는 가슴 쓸어 내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댓돌 위엔 반 듯 누운 옥색 고무신, 고무신 속을 들여다봤다. 아니나다를까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오지게도 들었구나. 내 서방을 다 마셨구나. 남의 농사 망칠 녀이! 방문 벌컥 열고 년의 머리끄댕이를 잡아챘다. 동네방네 몰고 다녔다.
소문의 꼬리가 잡혔다. 한 줌 달빛이었다.
담쟁이 넝쿨 이야기 ...............문인수
아버지, 흙돌담장 아래 담쟁이 뿌리를 묻었다. 담쟁이 넝쿨은 날마다 날마다 번져, 시퍼렇게 번져 나가던 아버지의 저 그리움, 그러나 숙부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왜정 때 만주로 일본으로 떠돌아 나간 양반도, 6·25 전쟁 직후 북으로 넘어간 양반도 돌아오지 않았다. 소식 없었다.
아버지, 담쟁이 넝쿨을 거두었다. 해마다 늦가을이면 단숨에 거두어 불살랐다. 이 놈의 세월! 번뜩이는 낫날로 썩둑썩둑 잘랐다. 한두 뼘 밑둥만 남기고 다 잘랐다.
또 기다리고 또 작파했다.
차가운 땅 위로 뭉턱, 거칠게 솟은 그루터기, 여러 해 부르쥔, 아버지의 빈 주먹만 남아있곤 했다.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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